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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돈 봉투 놓고 청렴선언… 법원은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나

입력
2018.09.10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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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전남 여수의 한 호텔 회의장엔 명패와 2~5㎝ 두께의 돈봉투가 나란히 깔렸다. ‘명동 사채왕’에게 2억7,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아 챙긴 최민호 판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전국법원장간담회였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도 참석했다. 법원장들은 출처 모를 돈봉투를 앞에 두고 청렴을 결의했다. 20~30년 넘게 법관 생활을 해온 고위법관들 중 문제 제기를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3년이 지나 당시 돈봉투는 법원행정처가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를 빼돌려 조성한 일종의 비자금이었음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행정처는 각급 법원 재무담당자들로 하여금 현금으로 분할 인출해, 보내도록 지시했다. 각급 법원은 행정처에 돈을 보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식비 등 허위 영수증을 첨부하는 식으로 예산 사용 내역을 조작하기도 했다.

기업의 과거 비자금 조성 방식과 쏙 빼닮았지만 사법부는 “비자금은 아니다”는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 배정됐던 그대로 각급 법원 수장에게 다시 지급됐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현금으로 직접 나눠준 이유에 대해서는 “처음 편성된 예산이라 편성경위와 집행절차를 설명해야 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해명은 여전히 궁색하다. 행정처가 공문서를 허위 작성하면서까지 추적하기 어렵게 굳이 현금화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공보관실에 편성된 예산이 행정처를 거쳐 다시 법원장에게 가는 복잡한 경로를 거쳐야 할 이유도 없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국민의 법 감정과 어긋난 사법부 태도는 이뿐이 아니다. 좀도둑에게조차 쉬 나오는 영장이지만 사법농단과 연루된 법관, 나아가 법관 출신 변호사들에게는 압수수색 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재판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 등 줄기각 사유도 가지가지다. 대법원 기밀자료를 무더기로 반출한 전직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에 검찰이 고발을 요청했지만 대법원은 “고발은 과하다”며 물리쳤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사법농단 사태와 법원의 자세가 절대권력의 부패, 은폐 행태와 다른 게 뭔지 궁금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원 내부적으로 이 사안을 법ㆍ검 갈등 내지 검찰의 과잉수사로 여기면서 일부 진보 성향 판사조차 검찰의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시대의 변화와 맞지 않게 대법원이, 법관들이 특권에 젖은 사법 귀족으로 착각하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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