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당시 헌재 소장 비판기사 작성해
언론사에 전달… 거의 그대로 실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에 집중됐던 검찰 수사가 대법원의 예산 전용 문제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들이 보도되거나, 보도 되도록 기획하는 과정에서 특정 언론사에 대가로 낸 돈의 출처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9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016년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을 비판한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을 깎아 내리는 기사를 직접 작성해 한 언론사에 제공해 준 사실을 파악하고 정확한 경위를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그 해 3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신문 기사 초안’이라는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엔 대법원장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 제도를 지적한 박한철 당시 헌재 소장 발언을 비판하는 취지의 기사체 글이 담겨 있었고, 이 글은 한 언론사에 건네진 뒤 며칠 뒤 별 다른 수정 없이 지면 기사로 보도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기사 보도 뒤 법원행정처가 이 언론사에 계획에 없던 구독료를 지급한 사실을 확인하고 돈의 출처와 성격을 캐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그 해 이 언론사 구독료 명목으로 예산 7,000만원 가량을 집행했고, 이듬해인 2017년에도 이 언론사에 대해서만 1억3,000만원 대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돈이 국제 유가 하락으로 기름값 부담이 줄면서 남은 예산을 사용했다는 진술에 따라 불법적인 예산전용이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의 대필 기사 작성과 언론사 구독료 예산 증액 모두 당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관련자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의 예산 전용이 의심되는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2015년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에 유리하도록 한 왜곡된 설문조사를 벌이고 이 결과를 특정 언론사에 제공해 유포할 계획을 세운 의혹(본보 7월20일자 1면)이 한 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설문조사 비용을 상고법원 홍보 광고비에 포함시켜 특정언론사에 지급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검찰이 확보한 법원행정처 관련 문건에도 ‘일반재판운영지원 일반수용비 중 사법부 공보홍보 활동 지원 세목 9억9,000만원 편성’이라고 기재됐다. 검찰은 계획이 실제로 집행됐는지 확인 중이다. 또 2015년 법원행정처가 전국 일선 법원의 공보관실 예산을 모아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법원장들에게 5만원권 현금 다발로 수천만 원씩 나눠준 정황도 수사 대상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원래 용도와 맞지 않게 예산을 썼다면 국고손실 등 범죄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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