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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24시] 슈퍼 갑부 대 서퍼들 간 ‘해변 쟁투’

입력
2018.09.09 16:34
수정
2018.09.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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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캘리포니아주 마틴 해변으로 가는 길이 닫혀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캘리포니아주 마틴 해변으로 가는 길이 닫혀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내 땅을 지나가지 말라”는 꼬장꼬장한 노인과 해변을 가기 위해선 그 땅을 지나갈 수 밖에 없다는 동네 주민들간 말다툼은 해안가라면 어디서라도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을 두고 벌어진 이 같은 언쟁이 동네 싸움 수준을 넘었다. 괴팍한 슈퍼 갑부와 서퍼들간 십여년에 걸친 분쟁이 미국 해변 전체의 명운을 판돈으로 둔 법정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해변의 악덕 갑부’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립자이며 지금은 벤처 투자업체를 운영하는 실리콘 밸리의 거물 비노드 코슬라(63). 자산이 30억달러로 추정되는 그는 2008년 서핑 장소로 인기가 있던 캘리포니아주 마틴 해변 인근 22만㎡를 3,250만달러에 구입한 후 2009년 9월부터 이 해변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를 차단했다. 이전 주인은 저렴한 주차 요금만 받으며 해변을 개방했지만 그는 푼돈의 주차비를 받느니 아예 해변을 폐쇄한 것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이를 무시하고 서핑을 즐기다가 급기야 2012년 5명이 사유지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지역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에 비영리기구인 ‘서퍼라이더 재단’이 2013년 해변 접근권을 보장해달라는 소송에 착수하며 법정 싸움으로 비화했다.

수년 간의 소송전 끝에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서퍼들의 손을 들었다. 지난해 항소법원은 캘리포니아 해변 위원회의 허가 없이 해변 접근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1심 판결을 유지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법에는 ‘해안의 평균조수면 아래 땅은 공유지이고 이에 대한 접근은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선에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다소 애매하게 규정돼 있는데 주 법원이 해변 접근에 무게를 둔 것이다. 이 같은 판결과 함께 캘리포니아 해변 위원회가 코슬라 측에 도로 개방에 협조하지 않으면 2,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코슬라는 도로를 개방하긴 했으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코슬라가 연방대법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미 해변 전체 관리가 영향을 받는 까닭에 연방대법원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전망이지만, 코슬라는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기겠다는 태세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내 남은 생애 동안 소송을 계속하겠다”며 “이건 원칙의 문제”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에도 할리우드의 거물인 데이비드 게펜이 말리부 해변 접근을 막았다가 언론 및 지역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소송전을 포기했으나, 코슬라는 “마틴 해변을 산 것을 후회한다”면서도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광적인 신념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쌓은 명성에 비춰 그의 집착을 ‘부자의 오만’으로만 치부하지 못하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엿보인다. NYT는 그가 일찍부터 바이오연료, 태양광 등 친환경 기술을 지지하고 투자해온 정치적 좌파의 히어로였다고 전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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