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영웅난다는 옛말처럼, 위기에는 더 쎈 놈이 필요하다. 구원투수는 불을 꺼야 한다. 불을 끄려면 강력한 패스트볼과 낙차 큰 커브를 과감하게 타자의 몸 쪽에 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배짱과 능력이 없다면 불을 끄러 올라 왔다가 오히려 더 키우게 될 것이다.

지금은 위기다. 지난 7월의 일자리 증가는 5,000명에 불과했다. 111년만의 무더위라고 했던 8월에 해수욕장이 텅 비어있던 것을 감안한다면 8월의 국내경기도 예년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내수 침체가 당분간 나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선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에서의 구조조정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수출 여건도 안갯속이다. 저출산의 지속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향후 3%대 성장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처럼 안팎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 하에서 가장 믿음직한 구원투수는 정부 재정이다. 지난 3일 2019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총지출 기준으로 470.5조원, 전년대비 9.7% 증가한 규모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웠던 2009년(10.7%)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의 ‘슈퍼 예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경제의 안팎에서 불어오고 있는 거센 폭풍우를 감안한다면, 2009년처럼 더 과감하게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할 타이밍이다. 그만큼 지금 어렵다.

내년 예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자리와 삶의 질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내년도 예산이 과거와 크게 다른 점은 중소기업 예산의 증가율이 14.9%로서 다른 분야의 예산에 비해 가장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규모로도 올해 8.9조원에서 내년 10.2조원으로 증가하여 처음으로 10조 원대에 진입했다.

왜 이렇게 중소기업 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했을까? 그만큼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자영업 비중이 21%로서 선진국의 2배 수준에 달하여 당분간 자영업의 구조조정은 지속될 전망이다. 자영업을 위한 종합 대책이 시급하다. 1인당 월평균 임금을 보면 중소기업(5-299인, 전산업, 2017년)은 대기업의 64%에 불과하다. 대기업에 비해 복리후생이나 근무환경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이다. 근속연수도 대기업(300인 이상, 9.37년)이 소규모 기업(5-29인, 4.23년)에 비해 훨씬 더 길다. 청년들은 중소기업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비어 있는 일자리는 20만개 이상이다. 청년 실업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중소기업의 구인난도 지속되고 있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중소기업의 역할이고, 지금 현재 비어 있는 일자리를 채우는 것도 결국 중소기업의 역할이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이 내년도에 14.9%의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은 환영할만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에 불과하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특히, 중소기업 일자리를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은 일자리로 바꾸는 작업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관련 예산이 앞으로도 계속 더 큰 증가율을 보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흔히 마중물로 비유된다. 가라앉은 경기를 되살리기 위한 재정지출 역시 펌프의 마중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비판이 있지만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중물이 부족하면 펌프가 작동하지 않고 물만 먹어버리는 것처럼, 정부의 재정도 충분한 양으로 제 때에 집행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그동안 우리 경제규모와 예산규모가 많이 커졌고 어려운 일자리 사정을 감안한다면, 슈퍼예산이라는 내년 예산은 슈퍼예산이라고 할 수도 없다.

김동열 중소기업연구원장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