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의 저서 ‘직업으로서 정치(Politik als Beruf)’에 따르면 ‘정치’란 국가들 사이에서, 혹은 하나의 국가 내부에서, 권력을 집적 획득하거나 권력 배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다. 그리고 직업으로서 정치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유인은 크게 ‘정치가 지향하는 이념적 목적을 위하는(für die Politik)’ 것과 ‘정치를 소득의 원천으로 삼는(von der Politik)’ 것으로 구분해서 설명되고 있다.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지향하는 ‘권력’의 목적이 반드시 공동체 전체 또는 국가의 번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치적 선호가 정치과정을 통해 성공적으로 결집되고 그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으로서 권력을 부여받는다면, 그 권력은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공익적 가치를 지향할 것이고 종국에는 국가번영으로 이어진다. 반면, 어느 사회의 정치과정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선한 정치적 선호를 결집해내는데 실패하고 그 정치과정에 기생하려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면, 그 국가의 미래가 밝을 수는 없다.

최근 다시 관심을 받는 어느 정치인이 표현했던 대로 정치는 분명히 ‘더러운 것’인 면이 있다.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끊임없이 정적을 상대해서 그를 꺾고 넘어서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이러한 불편한 속성으로 인해 정치가 일상 속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고 덕성을 갖춘 사람들로부터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그 빈자리가 결국 정치에 기생하는 사람들에 의해 채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정치과정이 국가 번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직업으로서 정치를 지향하는 건강한 인재 풀이 지속적으로 넘쳐 흘러야 한다. 세대를 뛰어 넘어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한 덕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해야하고, 그 과정과 노력들이 명예롭게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덕성을 기대하고 있는가? 해방 이후 근현대사에서 정치의 과정과 노력들이 온전하게 명예롭게 평가되고 뒤를 잇는 다른 정치인으로부터 본받고 싶은 귀감인 정치인을 우리는 과연 몇 명이나 가지고 있는가? 다음 세대의 주축이 될 젊은이들 중에서 덕성을 가지고 미래 지도자를 꿈꿀 수 있는 인재 풀이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그 포부들이 제도적으로 얼마나 뒷받침되고 있고, 성공적으로 기성 정치권으로 편입될 기회가 과연 공정하게 주어지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 질문들에 대해 어느 하나도 긍정적인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지난 50여년의 짧은 시기에 폐허에서 시작해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달성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개인적 그리고 집합적 역량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역량들이 미래에도 성공적으로 국가 번영을 위해 제대로 결집되고 발휘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개인으로서 시민들과 관료들이 아무리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한다해도 그 시점에서 정치적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잘못된 이념적 지향과 무능이 사사건건 사회 활력을 방해하고 한정된 자원의 배분과 활용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이는 이념의 진보 혹은 보수, 진영의 좌 혹은 우의 문제와 무관한 것이다.

부디 우리 사회의 직업으로서 정치가 시장과 국가의 작동원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갖춘,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질서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대응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채워지기를 바란다. 그것은 국가로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번영의 문제에 직결된 것이고, 그에 실패하는 경우 어느 철학자의 표현대로 ‘국민들 모두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 비극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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