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당국' 등 익명 기사 여전

8월 독자권익위가 지난달 22일 본사 18층 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홍빈 위원, 배정근 위원장과 이상민 권선희 이용백 신정호 신현호 위원. 맨 오른쪽은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배우한기자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지난달 22일 8월 회의를 열어 최근 보도의 개선점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인 배정근 위원장과 권선희(사이출판사 대표) 박홍빈(취업 준비생) 신정호(한국리서치 이사) 신현호(경제 칼럼니스트) 이상민(법무법인 에셀 대표변호사) 이용백(현대상선 대외협력실장) 위원과 간사인 진성훈 오피니언 에디터, 이충재 수석논설위원이 참석했다.

박홍빈

7월19일부터 8월21일까지 29일간 오피니언 면 필자 통계를 내봤다. 하루 9개씩 총 231개의 글 가운데 101개(43%)를 기자가, 54개(23%)는 교수가 썼다. 나머지 33%는 변호사, 연구원, 회사대표 등의 글이었다. 한국 사회에 기자와 교수만 사는 건 아닌데 그들의 글, 생각만 실리는 오피니언 면은 정상적이지 않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여성의 비율이다. 231개 글 중에서 23개뿐으로 반올림해야 10% 수준이고, 이마저 문학 부문에 편중되어 있다. 이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게 무섭다. 대부분 신문에 40대 이상의 기득권 남성들이 글을 쓰지만 신문은 그들 것만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오피니언 면이 ‘강강강강’이다. 노래도 ‘강약중강약’으로 가야 재미가 있다.

신정호

지난 한 달의 3대 이슈는 노회찬 의원 투신 사망, 안희정 성폭력 1심 무죄, 최저임금과 일자리 문제였다. 안희정 1심 무죄 판결은 국민 의견이 달랐고, 법 제도의 한계점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미투1호’ 판결인데다 정치자금법, 선거제도, 대의민주주의 시스템 문제를 새롭게 논의할 촉발제였다. 최저임금과 일자리 문제는 보수-진보 언론의 입장 차이가 크다. 무엇이 팩트인지 가려져 있고, 혼란을 주는 주장도 많다. 한국일보는 3대 이슈에 객관적인 기사들은 쓰고 있다. 어젠다를 주도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경쟁력을 갖는다.

신현호

이런 걸 없애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TV편성표를 보면 지면이 항상 아깝다. 노인분들조차 편성표를 거의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주식 시세표는 주식투자가들이 빨간 줄을 그으며 봤는데, 지금은 아무도 안보고, 지면에서도 사라졌다.

두 번째는 매일 실리는 부고 기사다. 돌아가신 분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부고다. 실제로 어떤 가치가 있나. 최근 의미 있는 부고는 노회찬 의원,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였다. 두분 정도라면, 공과를 포함한 일생에 대해 부고다운 기사가 있어야 했다. 외국에는 부고 전문기자, 협회까지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어릴 적 꿈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그 기준은 죽었을 때 뉴욕타임스에 부고 기사가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용백

일자리에 대한 혼란스런 기사가 많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베이비붐 세대에서 젊은 세대까지 관심이 많은 만큼 중립적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다뤄야 한다. ‘최악의 고용 상황…7월 취업자 수 증가 폭 겨우 5,000명’(8월18일자 1,6면)에서 어떻게 취업자가 급격하게 감소하는지 보여줘야 했다. ‘고재학 칼럼: 빈 가게가 늘어나는 까닭’(8월14일자 26면)에서 ‘자영업의 종말은 지구촌 공통 현상’ ‘정책적 구조조정으로 활로 열어야’란 말이 나온다. 언론이 이런 식으로 짚는 게 중요하다. 시리즈 ‘첨단굴기 중국夢, 위협받는 주력산업’은 현재 산업계가 처해 있는 고통이나 위상을 알 수 있게 설명했다. ‘연금개혁, 지금이 골든타임: 미래세대 ‘디스토피아’ 걱정에…2030 연금 보험료 인상 견뎌야’(8월20일자 1,4면)는 관심이 가는 주제로, 친절한 기획이다.

권선희

은산분리 완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최저임금 논란 등 찬반이 부딪히는 이슈에 반대자 이야기가 거의 실리지 않는다. 최저임금 문제도 소상공인, 자영업자 의견 위주로 내보냈다. 이들 이슈들에서 양측 의견 소개 비중은 9대 1이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의원장 인터뷰를 한 달도 되지 않아 두 번 실은 것은 과했다. 국내 제조 발사르탄 고혈압약에서도 발암물질 검출됐다는 기사에서 판매 중지된 59개 약품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시험대 오른 전기료 누진제… 에어컨 하루 10시간 켜면 月18만원 오른다’에서 정속형 에어컨이 전기료가 많이 나오고 인버터형이 적게 나온다고 했는데, 정작 두 둘을 구분하는 방법을 소개하지 않았다.

신현호

경제 문제는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는 고유한 색깔이 있으나 그 시각이 무엇이든 독자들이 기대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진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토리가 그럴 듯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기 주장이 강해 억지스러운 글을 쓴다거나 따분한 글을 쓰는 걸 독자들은 안 좋아한다. 최저임금을 공격하건 옹호하건 그럴듯한 분석도 있어야 한다. 성의를 가지고 자영업을 취재해보면 알 수 있다. 자영업자 비중은 1960년대부터 40년 동안 일관되게 줄었는데 그 이유는 자영업자가 임금 근로자로 변신하는 과정이 한국의 근대이기 때문이다.

이상민

안희정 사건 1심 판결문 전문을 분석한 기사를 8월20일자에 내보냈는데 그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했으면 좋았겠다. 8월6일자에 ‘숙의냐 정부 면피냐…도마 오른 공론화 제도’를 다뤘다. 공론화 시스템과 공론화 과정이 효과적인지 자세히 분석하는 기획기사도 있으면 좋겠다. ‘첨단굴기 중국夢, 위협받는 주력산업’은 시의 적절한 기획인데, 반도체 관련 전문적 용어는 따로 설명해줘야 독자가 친절하게 느낀다.

박홍빈

미국 뉴욕포스트가 패션 브랜드 수프림(Supreme)과 협업으로 1면을 제작해 하루 23만부가 2시간 만에 완판 됐다. 1면이 신문을 읽고 싶게 한다. 한국일보는 1면에 사진을 많이 활용하는데, 트렌디하고 멋진 사진을 기대한다. 기사에 넣는 삽화가 기사 품질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7월30일자 1면)고 하고 2주 뒤 더운 날씨 탓에 해수욕장 장사가 썰렁했다(8월 13일자 4면)고 해 내용이 배치됐다.

배정근

종이신문이 차별화하려면 정보에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현장성이 있고, 사건의 이면을 보여주며,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집중 취재를 해서 파헤쳐야 한다. 정부 자료, 공식 통계에만 의존하다 보면 현실은 모른 채 기사를 쓸 수 있다. 거제도 조선산업의 모습은 현장에 가야 답을 찾을 수 있다. 논란이 되거나 중요한 문제일수록 기사를 통해 샅샅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발표에다가 자기가 취재한 부분을 조금 얹어 기사를 작성하는 게 관행이지만 이제는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언론은 공론의 장을 제공한다. 찬반양론을 상세히 소개하고 토론을 유도해야 한다. 사회면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코너가 그런 기획인데 기사량이 너무 적어 생각해 볼 단서를 주지 못한다. 온라인에서도 토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장치가 없다.

신정호

최근 30년 동안 성공한 상품, 서비스의 특징이나 속성을 분석했는데, 그 추세가 바뀌고 있다. 최근으로 올수록 차별성, 나와의 관련성(relevance)의 유의성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친근감이 중요했으나 지금은 많이 줄고 유의성도 떨어진다. 비슷한 상품이 많고, 정해진 시간과 비용 안에서 효율적 가치를 중시하는 추세 때문일 것이다. 기사를 이런 측면을 생각해 보면, 이슈에서 한국일보만의 차별적인 것, 깊이와 이면을 보여주어야 한다. 비슷비슷한 단편적인 기사들의 홍수를 보면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 일상적인 것, 다양한 것들, 나와 관련된 것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카드뉴스인 ‘관공서에선 아버님, 옷가게선 언니…나만 부담스럽나?’(7월31일)처럼 밀접성 높고 공감 가는 기사가 많아야 한다.

권선희

‘나, 개인컵 쓰는 사람이야… 스타벅스서만 올해 벌써 300만명’(8월9일자 16면)은 한국인 이야기인데 오해 소지가 있는 외국인 이미지를 썼다. ‘꽉 닫힌 마음 확 열어준 훈훈한 엘리베이터 벽보’(8월2일자 18면)은 제목은 훈훈하지만 그래픽이 그렇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안을 묘사했으나 회색 바탕이라 기사 전달이 잘 안 된다. ‘여론 속의 여론: 대통령 지지 10%포인트 뚝… 안보 효과 정체, 경제 우려는 커져’(7월28일자 17면)는 기사 바탕을 회색으로 처리해 읽기 힘들었다.

이상민

‘특검, 김경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포착’(8월2일자 1면)은 기사 출처를 ‘사정당국에 따르면’으로 표현했다. 보통 사정당국은 검찰을 말하는데, 기사는 특검 수사 내용이다. 문건 추가 공개 후폭풍…김명수 책임론 확산’(4면)에서는 ‘법조계에 따르면’이라며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이미 발표한 내용을 인용했다. 익명 취재원을 쓰던 관행 탓에 이리 한 것 같은데,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겠다.

배정근

취재원 입장이 곤란해지는 기사에서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일보는 익명사용에 대해 무신경해 보인다. 기자들이 쉽게 기사를 만들어 쓰려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사정당국’이란 단어는 구시대적인 표현이라 쓰면 안 된다.

이용백

한국일보 홈페이지 첫 화면에 8월 21일자 ‘완전범죄는 없다: 비오는 날 여성만 노린 홍대 살인마… 골목 곳곳 덫을 놓다’가 나와 있어 엊그제 일어난 일인 줄 알았다. 긴장감을 주는 기사였는데, 제목이 너무 최근 사건처럼 되어 있어 시쳇말로 낚였다. 홈페이지에 싣는 뒤끝뉴스로 다룰 얘기가 굉장히 많은데 한 달에 2,3건만 제공된다. 인포그래픽, 카드 뉴스의 빈도수도 떨어진다.

신정호

한국일보 홈페이지에서 기사 배치의 알고리즘을 꼭 바꿨으면 한다. 일례로, 상징성이 큰 첫 화면에 시의성이 없는 연재인 ‘완전범죄는 없다’가 배치될 일은 아니다. 검색이 너무 안 좋아 기사를 찾을 때 불편하다. 모바일에서 한국일보 연재 코너에 들어가면 30~40개가 뜨는데, 너무 오래된 기사들이 많아 노후한 느낌이 든다.

배정근

제보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의 많은 보도가 제보에 의존했다. 제보의 증가는 쌍방향, 디지털 같은 미디어환경 변화 때문이다. 국내 20개 언론사의 제보 접수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편차가 켰다. 대체로 신문은 무성의하고 방송은 체계적이다. 신문사 중에 세계일보는 홈페이지 우측 상단에, 다른 신문사들은 홈페이지 제일 하단에 제보창이 있다. 독자들이 제공하는 사건ㆍ사고 영상이 중요한 방송사들은 뉴스사이트 최상단의 눈에 띄는 자리에 제보창이 있고, 제보 방법도 앱, SNS, 웹하드 등으로 다양하다. YTN은 제보 영상 코너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운영해 페이스북 최고 강자가 됐다. 제보 사이트가 없는 두 곳 중 한국일보도 포함되어 놀랐다. 독자와 소통하는데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미래 저널리즘의 방향은 참여 저널리즘이고 협업 저널리즘이다.

정리=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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