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4회 베페 베이비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육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가 최근 공개한 ‘2018 행정안전통계연보’ 자료 여섯 번째 페이지에 실린 지난해 기준 연령별 인구 그래프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포인트가 눈에 띈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좌하향으로 커브를 그리는 그래프 끄트머리 두드러지게 올라선 지점. 2007년(丁亥年)에 태어나 올해 11세인 49만여명의 ‘황금돼지띠’ 세대들이다. 연간 출생자 수가 30만명대로 내려선 지난해(35만여명)와 비교하면 동갑내기들의 규모가 매우 크다. 지나고 보면 상술에 붙잡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당시 엄마들의 출산 열풍 덕분이겠지만, 이 ‘황금돼지’들은 평생 비슷한 연령대와는 차별화된 경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아이들의 아버지 세대인 1971년생 돼지띠 95만여명이 겪은 세상과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저출산 시대의 오아시스 같았던 10여년 전의 반짝 출산붐. 공교롭게도 합계출산율 1.0명 수위마저 위태로운 지금, 다시 한번 황금돼지띠 열풍이 불고 있다. 2019년은 흙의 기운을 지닌 기해년(己亥年)이어서 내년(음력기준) 출생하는 돼지띠 아이들은 2007년생들과 마찬가지로 역술가들이 말하는 황금돼지띠 세대로 불리게 된다. 2019년에 태어나면 재운이 뛰어나고, 전반적으로 복을 지닌다는 속설이 2007년에 이어 임신 여부를 저울질하는 가임여성들의 마음을 다시 흔들고 있다고 한다.

요즘 예비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2019년생 황금돼지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임신시한이 언제인지를 묻는 질문, 내년이야말로 2007년보다 더 진짜 황금돼지띠 해라는 주장, 2019년생 아이를 갖게 됐다고 자축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유통업계도 은근히 관련 소비가 늘어날 것을 기대하며 행사를 준비하는가 하면, 얼마 전 한국조폐공사는 황금돼지해를 뜻하는 ‘Year of the Golden Pig’가 쓰여진 미니골드바를 내놨다. 출산율 회복을 절실히 바라는 이들이라면 ‘매년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황금돼지해만 같아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지 모르겠다.

잠시나마 임신ㆍ출산이 유행처럼 번질 수는 있으나, 그래 봤자 매년이 황금돼지해일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안다. 2007년 49만명을 넘겼던 연간 출생자는 2년 뒤 이전과 비슷한 44만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후 추락한 출산율은 지난해 1.05명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는 안타깝게도 황금돼지해를 연거푸 맞더라도 뒤집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

여성들이 차라리 황금돼지 이야기와 같은 풍설에 흔들려 술렁일지언정, 국민연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축소돼 이대로 둔다면 국가경쟁력이 만신창이가 될 거라는 사회 곳곳의 경고음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간명하다. 단지 정부의 출산율 제고 대책들이 부실하고, 정치권에선 아이 낳기 새마을운동이라도 필요하다는 듯 ‘출산주도 성장’을 운운하는 세태가 불만이어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가 혐오와 무관용으로 덮여있다는 불안감이 여성들의 분만실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가로막고 있음이다. 누구라도 주류에서 벗어나면 혐오의 대상으로 몰려 고통받을 수 있는 사회. 출산을 고민하는 여성들은 다른 성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공격하고, 가장 보호받아야 할 모성마저 맘충이라는 혐오발언으로 상처입는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다. 2000년대 초 독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을 분석한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저서 ‘모성애의 발명’에서 자녀를 많이 갖도록 하는 동력은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 보다 평등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누구의 혐오도 받지 않고, 공정한 기회 앞에 서는 평등한 사회. 더 이상 황금돼지해의 속설도, 출산력 조사도 필요 없는 세상의 출발선이다.

양홍주 기획취재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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