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으로 ‘감정 잔고’가 부자인 아빠들

‘워라밸’ 시대의 선구자인 ‘육아휴직한 아빠들’. 왼쪽부터 한민규(38)씨의 품에 안겨 있는 둘째 아들 이준(1), 이광국(39)씨와 책을 읽고 있는 딸 예령(5)ㆍ신비(3), 손정환(39)씨와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고 있는 막내아들 민우(3). 한민규ㆍ이광국ㆍ손정환씨 제공

#1 ”휴가 때 집에 있는 게 불편해. 내 집인데도 낯선 손님 같은 기분이 들거든. 멋쩍은 마음에 공연히 TV만 보고 있을라 치면 아주 가끔 애들이 먼저 올 때가 있어. 하는 말은 늘 같아. ‘아빠, 용돈 좀 요.’” 장군 진급을 앞둔 부대 ‘넘버2’ 선배의 고백이었다. 16년 차 공군 소령이었던 손정환(39)씨의 머리 속엔 어떤 얼굴들이 벼락같이 스쳤다. 벌써 3년째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내와 고만고만한 세 아이, 주말마다 허겁지겁 눈에 담고 오는 그 얼굴들이. 반년의 고민 끝에, 그는 결심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가시밭길’ 내가 한번 가보리라!”

#2 “여보, 일하고 와서 힘들겠지만 둘 중 하나는 해줘야 돼. 애들이랑 놀아주든가, 설거지를 하든가.” IT 기업 회사원이었던 이광국(39)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가 설거지하면 안 될까?” 낼 수 있는 소리라곤 겨우 ‘음~오~아~예’ 뿐인 두 딸들이 온 집안을 휘젓고 있었다. 하루 걸러 야근이 일상이었던 그에게 ‘도저히 놀아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하면 핑계였을까. 문득, 애들이랑 놀아주기 싫어서 주말에도 출근한다는 부장들의 우스갯소리가 가슴을 때렸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해보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아내를 다시 일터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그는 ‘사내 최초’가 됐다. 아무도 쓰지 않아 있는 줄도 몰랐던 권리를 처음으로 쓴 사람이.

#3 “가사요? 도와주는 축에도 못 꼈죠. 기껏해야 주말에 청소기 한 번… 육아는? 퇴근하고 오면 아무리 빨라도 9시… 잠든 아이 보면서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는 게 다였을 걸요.” 서울에서 원주까지 4시간 출퇴근에 지쳤던 공기업 과장 한민규(38)씨는 어느 순간 딸에게 ‘잊혀진 아빠’가 됐다. 주말마다 처절한 구애가 반복됐지만 “와아앙~”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매달리는 건 늘 엄마뿐. “어린이집 등ㆍ하원 도우미 구하기는 별 따기인 데다, 잠깐씩 돌봐줄 친지도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선택지는 하나뿐이었죠.” ‘딸의 인생에서 영원히 엑스트라일 순 없다’는 결의로 보낸 2년, 그는 이제 어엿한 주연 배우다. 시도 때도 없이 딸이 달려온다. “아빠아! 놀아줘~”


◇내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가 되고 싶다

2010년 전국에 달랑 819명(고용노동부), 눈 씻고 찾아봐도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희귀 동물’ 수준이었던 육아휴직 아빠들은 지난해엔 12,403명으로 늘어났다. 7년 만에 10배가 넘게 세를 불렸지만 갈 길이 멀다. 어딜 가나 묘한 시선을 받는 게 이 남자들의 일상. 맞벌이 시대는 왔지만 ‘맞돌봄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탓이다.

“남자가 주방 드나들면 고추 떨어진다”는 말을 듣고 자란 3040 아빠들에겐 자식이었던 시대와 부모가 된 시대의 간극이 너무 멀다. “예전엔 무의식적으로 여자가 할 일과 남자가 할 일이 나눠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라 온 시대가 그랬으니.”(손정환) 만나는 사람이 있어서 결혼했고, 결혼하니 아이가 생겼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안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아버지와는 다른 아빠가 되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요.”(한민규) 수명도 늘고 정년도 늘고, 일해야 하는 시간은 이제 ‘평생’인데,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을 내팽개치면서까지 경주마처럼 전력 질주해야 할 이유는 또 뭔가 싶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빠를 기다려주면서 크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거죠.”(이광국)

그래서 이들은 황무지로 나섰다. 그곳에서 당당히 ‘육아 아빠’라는 씨를 뿌린 이들을, 혹자는 ‘출포자’(출세 포기자)라 불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출포자요? 네, 그럴지도요.”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 그들은 성큼 다가온 ‘워라밸 시대’의 선구자였다.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난 한민규(38ㆍ왼쪽)씨와 이광국(39ㆍ오른쪽)씨. 5일 강남에서 만난 손정환(39ㆍ가운데)중령은 이 인터뷰를 위해 평일에 부대가 있는 청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아빠들을 위한 육아정보 커뮤니티, ‘100인의 아빠단’ 8기로 활동 중이다. 박지윤 기자

◇권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걸 쓰겠다고?”

“1주일간 잠을 못 잤어요. ‘여보, 내일은 진짜 얘기할게!’ 아내 손을 호기롭게 꽉 잡아주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머릿속으로 어떻게 말할지 시뮬레이션을 했죠. 전전긍긍하다 겨우 얘길 꺼냈는데, 상사 표정을 보니 아차 싶더라고요. ‘아, 내가 이런 걸 요구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한민규)

한씨의 직장은 한 아이당 부부합산 3년의 육아휴직이 보장된 공기업이다. 아이가 2살이었던 2015년 당시, 아내가 이미 1년 반을 소진해버린 상태. 남아있는 절반은 ‘이론상’ 아빠의 몫이었다. 없는 권리를 만들어 쓰겠다는 것도 아닌데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사의 얼굴엔 순식간에 곤혹스러움이 번졌다. ‘안 된다곤 못하지만 고민은 다시 해봤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는 시기라, 어수선한 상태였죠. 결국 그렇게 1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휴직을 할 수 있었어요.” 책상 빠지는 걱정까진 안 했지만, 지방 발령이나 기피 업무를 떠맡게 될 상황은 각오했다. 심지어 장모님까지 걱정을 보탰다. “한서방 정말 괜찮겠어?” ‘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불안한 기색의 팀원들 표정에 마음이 불편했다.

한민규씨가 딸 이현과 ‘학부모 육아수업’에 참석한 모습(왼쪽)과 아들ㆍ딸들의 뽀뽀세례를 받고 있는 모습(오른쪽). 휴직 전만 해도 한씨는 “내 딸이 날 아빠로 알긴 알까”하는 고민에 시달렸다. 이제 이현양은 ‘아빠라면 죽고 못사는 딸’이 됐다. 한민규씨 제공

“나가라면 나가지 뭐! 하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있긴 했어요. 돌아올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접었던 셈이죠. 그런데 막상 휴직하려고 보니 동료들한테 너무 미안한 거예요. 당장 제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으니 동료들은 원래 하던 일 위에 제 업무까지 나눠 가져갔죠.”(이광국)

육아휴직이 필요한 시기의 아빠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핵심 실무를 맡고 있다. 당장 그 자리를 채울 ‘경력직 인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 IT 기업에서 정보보안 업무를 맡았던 이씨의 자리 또한 어쩔 수 없이 신입 사원으로 채워졌다. “제도가 있어도 소용없어요. 그 제도를 쓸 수 있는지 없는지는 결국 ‘사람’에 달려 있으니까. 저 같은 경우는 전적으로 팀장님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1년을 꽉 채워 쉴 수 있었던 거예요.” 같은 회사 영업 부서의 남자 직원도 휴직을 신청했지만 끝내 반려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가 비슷한 또래라 이씨의 사정을 잘 이해했던 팀장이 세심하게 신경 써 주지 않았더라면 그가 낸 ‘휴직계’ 또한 같은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1년을 꼬박 쉬고 돌아왔지만 밥 먹듯 이어지는 야근은 여전했다. 그래서 이씨는 복직 9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하고, 올해부턴 전업주부가 됐다. “신약 개발분야에서 일하는 아내는 결혼 전부터 이루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일 때는 거의 매일 자정에 들어오곤 하는데, 이대로는 도저히 아이 둘을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이광국) 부부가 ‘52시간 근로제’가 무색한 직무환경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던 중 결국 남편이 사표를 낸 것이다. “야망보단 가족, 커리어보단 워라밸이 더 중요한 건 저였으니까요.(웃음)” 가끔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무슨 빽으로 일을 그만둬?” 물을 때마다 그는 웃으며 맞받아친다. “마누라 빽!”

손정환씨가 막내아들 민우와 밥을 짓고 있는 모습(왼쪽). 첫째 딸 은율(8)ㆍ둘째 아들 지우(5)와 함께 ‘100인의 아빠단’ 행사에 참석한 모습(오른쪽). 손씨는 “세 아이 모두 성격이나 특성이 제각각이다”라며 “아이의 성향에 맞는 육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정환씨 제공.

◇아내가 퇴근하기만 고대하는 ‘육아 감옥’

“휴직하고 세 아이를 혼자 키우던 아내는 제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속사포같이 쏟아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 다 귀담아듣질 못했거든요. 건성건성 대답하다가 “밥 먹자” 하면 자연스레 대화는 끝나고. 그런데 제가 육아휴직을 해보니까 아내가 왜 그렇게 저만 오면 갑자기 말문이 터졌던 건지 너무 이해가 됐죠.”(손정환)

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 존재와의 대화. 그것은 ‘독박 육아’에 내몰린 엄마들이 가장 갈구하던 것이었단 걸, 손씨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주말부부를 하며 부대가 있던 청주에 주로 머물렀던 그에겐 용인 집이 낯설었다. 친구는커녕 ‘육아 전쟁’을 함께해 나갈 전우 한 명이 없었다. ‘조리원 동기’가 없었던 건 물론이거니와, 맘 카페는 ‘파파’라는 이유로 가입이 불가했다. 용기를 내 첫째의 초등학교 녹색 어머니회에 나가봤지만, ‘녹색 아버지’를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은 순수하다 못해 노골적이었다. 그렇게 아이 셋만 바라보는 육아 감옥에 갇히자 저절로 말은 줄고, 화만 늘었다. “휴직만 하면, 아이들과의 관계도 드라마틱하게 바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애들에게 훈계만 하면서 화를 내고 있더라고요.” 퇴근하는 아내만 바라보는 날이 계속되자, 어느 날 이런 말이 돌아왔다. “당신, 이럴 거면 그냥 복직해.”

“육아 우울증? 엄마만 겪는 게 아니에요. 육아는 매일매일이 똑같은데 애들은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훨씬 많고… 어떻게 보면 매일이 월요병인 거죠. 그러다 갑자기 각진 정장 딱 갖춰 입고 상쾌하게 출근하던 날들이 생각나면 울컥해요. 왜냐, 주양육자는 ‘감정노동자’거든요.”(한민규)

이광국씨의 두 딸 신비와 예령이 아빠와 함께 과일화채를 만들어 먹고 있다. 이광국씨 제공.
◇‘유쾌한 작당’으로 육아 우울증 돌파

어디 육아뿐인가. 아무리 해도 표가 안 나는 가사노동은 멈추는 순간 바로 드러나는 가성비 제로의 ‘무임금 노동’이다. 직장에서 10년 넘게 쉼 없이 ‘성과’에 매달려온 아빠들은 금방 속이 터진다. “제가 너무 답답하니까, 한번 아예 안 해봤거든요.(웃음)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오빠, 여기 와서 바닥 좀 손으로 쓸어봐’ 아이가 하루 종일 기고 핥는 바닥에 먼지가 수북… ‘아뿔싸’였죠.”(한민규) 청소야 그렇다 치고 팔자에 없던 요리는 더 고역이다. “조금만 짜거나 매워도 애들은 안 먹어요.”(이광국) 차라리 맛없다고 얘기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울기만 할 뿐이다. 적어도 ‘어린이집’이라는 카드가 있는 두세 살도 이럴진대, 몸도 못 가누던 신생아를 아내가 무슨 심정으로 돌보았을지 생각하니 미안함에 가슴이 싸했다.

“이 육아 우울증의 돌파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심정으로 손씨는 ‘용인 지역 아빠 모임’을 결성했다. 군인, 회사원, 교사, 개발자…. 직업은 제 각각이어도 쏟아낸 고민은 하나 같았다. “아, 엄마들의 수다가 왜 끝이 없는지 알겠더군요.” 육아 고민으로 똘똘 뭉친 아빠들은 때때로 ‘유쾌한 작당’을 벌이기도 한다. “선생님 아빠와 개발자 아빠가 머리를 맞대더니 지역 기반 ‘교육정보 공유 앱’을 만들어보자는 거예요. 저는 ‘파파’ 키즈카페를 차려보자고 했어요. 아이와 신나게 몸 쓰며 할 수 있는 신체놀이를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공간으로 꾸려보자.”(손정환) 아내와 아이가 모든 잠든 야심한 밤, 맥주 한잔 기울이며 ‘육아일기’를 끄적이다 보면, 한씨는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한단다. “같이 놀 땐 정신없어 모르거든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재미’를 강요한 건 아닌지, 밤마다 반성해보니 ‘내일은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죠.” (한민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마다 각종 ‘육아 강좌’를 찾아다녔다는 이씨도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 “육아 서적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 휴직 전엔 어떻게 알았겠어요.”(이광국)

아빠들은 육아우울증을 ‘창작욕’으로 승화시켰다. 한민규씨는 블로그에 연재한 육아일기를 포토북으로 엮었고(왼쪽), 손정환씨는 자신의 경험을 집대성한 책을 집필해 정식출간(오른쪽)했다. 한민규ㆍ손정환씨 제공
◇아이의 ‘처음’을 느긋하게 지켜봐 주는 아빠

“우리 이현이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색깔은 핑크색이 아니라 초록색이었거든요. 애 엄마는 핑크색 셔링 치마도 좀 입히라고 성화인데, 저는 츄리닝 입혀서 보내고 그랬어요. 나중에 어린이집 가보니까, 우리 딸의 보이시한 패션이 트레이드 마크가 됐더라고요. (웃음)”(한민규)

어린이집 엄마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역시 아빠가 키우니 좀 다른 것 같아요.” 한씨의 육아 신조는 다름 아닌 ‘딸도 아들처럼, 아들도 딸처럼’. 딸아이가 인형 대신 공룡을 찾을 땐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단다. “아빠는 결코 엄마의 대체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그래? 그럼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출근한 아내에게 쉴 새 없이 ‘질문 카톡’을 쏘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간장 넣고 볶으면 평타는 치더라고요. 정 안 먹으면 우유 한잔 꿀떡꿀떡 먹여서 보내고.” 대신 끝내주게 땀을 빼며 놀아준다. 이씨의 딸 예령이와 신비는 아빠 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요가볼 위에서 ‘방방이’를 타고, 손씨의 딸 은율이와 아들 지우ㆍ민우는 ‘배꼽 사냥꾼’이 된 아빠를 피해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한씨의 딸 이현이는 꽉 껴안은 아빠의 품을 요리조리 탈출하는 게 제일 재밌단다. “애들은 사실 아빠랑 피부를 맞대며 하는 신체놀이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이것만큼은 엄마보다 훨씬 더 잘해줄 수 있다니까요” 물론 신나게 놀다 지친 아이들이 아빠의 ‘2% 부족한 음식’도 맛있게 먹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는 건 아니다.

한창 의욕에 불타던 육아휴직 초기 시절, 딸과 함께 놀이터를 찾은 한민규씨의 모습. 한민규씨 제공

“남자는 애 못 키운다? 편견이에요. 육아 DNA라는 건 엄마들의 ‘전유물’이 아니거든요. 남자들이 육아와 가사를 경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그 속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인 거죠.”(손정환)

아무것도 몰라서 실수도 많았지만, 하나하나 부딪히며 아빠만의 답을 찾기도 했다. 먹는 음식의 반은 흘려버리는 세 살 아들에게 언성을 높이다 손씨는 문득 깨달았다. “’두 손으로 꼭 잡고 먹어야지!’하고 잔소리할 게 아닌 거예요. 모처럼 일도 쉬겠다, 아빠는 남아도는 게 시간뿐인데?” 그 후론 그냥 뒀다. ‘흘린 국물이 축축하고 끈적거린다는 걸 직접 알고 나면 언젠가는 꼭 잡고 먹겠지’란 생각에서였다. 어차피 다섯 살은 되어야 제대로 할 것을, 고작 몇 개월 빨리 한다고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아이에게 ‘이거 해볼까?’보단 ‘저거 하지 마’란 소리부터 했던 것 같더라고요.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그래요. 그래? 그럼 나는 다르게 해보자. ‘실수해도 괜찮다고 하는 아빠’가 돼보자.”(이광국) 어른에게도 ‘처음’은 힘든 건데, 세상만사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들에게는 오죽할까. 보슬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받쳐 드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단 비옷 입고 웅덩이를 밟으며 뛰어놀게 하는 이유다. “사춘기 때 ‘무서운 얼굴’로 갑자기 등장한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슬그머니 방문 열고 나와 “아빠~”하고 부르며 다가설 수 있는 자리에 머물고 싶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아이들의 마음에 ‘감정 잔고’를 쌓고 있는 시간인 거죠.”(손정환) 그래서 가끔 죽비처럼 꽂히는 아내의 걱정 어린 잔소리도 못 들은 척한다. “애들 원래 그러면서 크는 거야~ 이게 아빠의 방법이라니까~”라고 속으로만 부르짖으며.

이광국씨의 두 딸들은 비오는 날이면 우산 없이 비옷을 입고 뛰논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웅덩이 밟기’다. 이광국씨 제공

◇회사는 ‘잠깐’ 당신 없이도 잘 굴러간다

“휴직계를 낼 때까지만 해도 정말 걱정했거든요. 내가 빠지면, 지금껏 해오던 일들이며… 우리 팀 업무공백은 다 어떡하지?(웃음)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걱정이었어요. 회사는 저 없이도 잘~만 굴러가더라고요.” (한민규)

복직 후, 고생한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새롭게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반년 정도를 보내고 나니, 휴직 전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1년 쉬는 동안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면서 5개월 정도 휴직을 연장했거든요. 연장한 5개월이 근무경력에서 빠지면서 승진이 조금 밀리긴 했지만 책상도 그대로고, 하는 일도 똑같습니다. 왜 그렇게 지레 겁을 먹었나 싶어요.” 한씨는 요즘 들어 부쩍 상사에게 자주 묻는다. “부장님? 저 쉬고 온 거 맞아요? 바뀐 건 늘어난 흰머리랑 나이뿐인 것 같은데…” 회사 분위기는 사뭇 바뀌었다. 권장까진 아니더라도 ‘낼 사람은 주저 말고 내라’는 분위기다. 후배들도 자주 연락을 해 온다. “선배, 저도 이번에 육아휴직하려고 하는데요.” 휴직 급여받는 방법부터 ‘프로 살림꾼’으로 거듭나는 비법까지 아낌없이 전수해주곤 한다.

“군 사정상 결국 1년을 못 채우고 조기 복직하긴 했지만, 돌아오고 나선 업무가 다 새로워요. 가장 많이 바뀐 건 ‘사람과의 관계’예요”(손정환) 아내와 전화 한 통을 해도 예전과 다르다. 단 한 번이라도 ‘주양육자의 입장’이 되어본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는 사정들을 속속들이 알고 나서부터다. “과감하게 깜빡이를 켜고 인생의 국도로 차선 변경을 시도했던 거였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육아 휴직을 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상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 거죠. 명령과 복종이 일상이었던 군 생활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부하직원들이 보이는 ‘색다른 충성’에 내심 뿌듯한 마음은 덤이다. “대대장님을 따라 반드시 육아휴직을 하겠습니다!”며 따르는 부하들이 좀 늘었달까.

“휴직했을 때 놀이터에 나가면 아이들이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던 게 기억나요. “저 아저씨는 왜 매일 나와요?”라고 묻더라고요. 대부분 엄마나 할머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었죠. 그러다가 갑자기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거예요. ‘아저씨’라고 바로잡아 줘도 자꾸자꾸 아빠라고. 이 아이들의 삶에서 ‘아빠’라는 존재가 얼마나 지워져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를까.” 그래서 저는 매번 말해요. 적어도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언젠가 ‘누구나’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한민규)

황무지에 가까스로 뿌리를 내리는 아빠들은 말한다. ‘얼른 이리로 와서 같이 새로운 땅을 만들자’고. “남자의 육아휴직도 ‘제대로’ 보장해주는 좋은 직장 만나 배부른 소리한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는 해요. 근데 못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은 또 다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여건이 안돼’라는 말에 쉽게 숨어버리는 아빠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회사는 잠깐 당신이 없어도 잘 굴러갑니다. 당당히 휴직하세요! ‘아이의 삶’에 늦지 않고 등장할 수 있는 적기는 바로 지금이랍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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