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이다. 전문가들은 2020년부터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유는 주요국에서 2020년부터 5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되기 때문이다. 4세대 이동통신보다 20~100배가량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른 5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되어야 자율주행차를 비롯해서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회자되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을 상용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국내 이동통신 3사는 내년 3월을 목표로 5세대 이동통신을 상용화하기 위해 통신망 구축에만 10조원 이상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은 2020년에 5세대 이동통신을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고정형 이동통신 방식을 기반으로 와이파이 속도를 5세대 이동통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시범사업을 일부 지역에서 금년 하반기에 시행하지만 전국 범위의 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는 다른 주요국들과 마찬가지로 2020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5세대 이동통신과 관련된 통신장비의 기술 수준이 시장의 기대만큼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수준의 적정성뿐만 아니라 보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화웨이를 제외하면 에릭슨, 노키아, 삼성 등 주요 통신장비 업체들은 충분한 물량을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도 문제다.

시장의 사용자들은 현재 4세대 이동통신망으로 제공되는 데이터 전송 속도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5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된다고 해도 사용자들이 효익을 체감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쉽지 않다.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만들어 낼 자율주행차나 스마트 팩토리 시장도 4, 5년 후에야 활성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이동통신사들의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기적으로는 회수할 방법을 찾기 힘든 것도 5세대 이동통신의 상용화를 늦추는 이유로 보인다. 보안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통신망 구축이 불가능한 것도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주요국들은 통신망 구축과 관련된 기술이 좀 더 안정화되고 향후 통신장비의 공급 물량이 증가하면, 보다 안정적인 통신망을 보다 낮은 비용으로 구축하고자 시간을 벌고 있다. 또한 관련 기업들은 5세대 이동통신망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들은 올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진행되는 5세대 이동통신의 상용화 과정에서 불거질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통신망의 구축 및 운영전략을 수정 보완해 나갈 것이다.

규모의 수요 경제로 설명되는 인터넷 기반의 네트워크 경제에서 시장의 선도진입자가 누릴 수 있는 경쟁적 우위를 간과하기는 쉽지 않다.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상용화하여 관련 기술들의 표준화 기회를 선점하고 관련 산업의 한발 앞선 투자를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자칫 우리 시장이 주요 경쟁국들의 테스트베드쯤으로 전락할까 두렵다. 정부는 세계 최초 상용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필요한 제도의 정비를 통해서 5세대 이동통신 환경에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성장해 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을 전국 단위로 보급한 인터넷 강국임을 자부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터넷 기업을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인터넷과 모바일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중국의 눈부신 약진을 지켜보는 형국이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타이틀로 우리를 포장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성장했다. 타이틀을 얻기보다 내실을 기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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