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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은 위험” 불신 탓에 유럽 ‘홍역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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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은 위험” 불신 탓에 유럽 ‘홍역 몸살’

입력
2018.09.10 10: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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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루마니아서 시작한 홍역

올해 유럽서 환자 40만여명

다른 국가들도 백신 회의론 만연

지난 6월 6일 루마니아 치틸라에서 한 유아가 홍역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6월 6일 루마니아 치틸라에서 한 유아가 홍역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올해 여름 루마니아 북동부 이아시(Iasi)에 사는 40대 남성 요안 네치타 게오르그는 여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시내 한 병원을 찾았다. 홍역에 걸린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는 자녀 9명 중 누구도 홍역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았다면서 “백신을 맞은 아이들은 병에 걸리거나, 마비가 왔다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년 전부터 홍역이 유행한 이래 약 400건의 발병 사례를 접한 이 병원의 모든 병실은 홍역 환자들로 가득 찼다. 사전에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던 탓이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루마니아 현지 르포를 통해 이 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이른바 반(反)백신 풍조를 이 같이 전했다. 2016년 루마니아에서 시작된 홍역으로 이 나라는 물론, 유럽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신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교사인 주부 라모나 부잔은 자신의 딸(6)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았다. 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홍역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최근 홍역 환자들의 사망은 건강상의 다른 요인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2년간 루마니아 내 홍역 감염자는 1만 5,000명 이상으로, 이 가운데 59명이 사망했다. 부잔은 “모든 일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백신을 맞으면 위험하다. 안 맞으면 다른 위험이 있다”면서 만약 ‘취학 전 예방접종 의무화’가 시행된다면,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루마니아의 ‘백신 불신’ 분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세 유아의 홍역 백신 1차 접종률은 2012년 94%에서 2017년 86%로 뚝 떨어졌는데, 이는 유럽 국가들 중 최저다. 지난해 2차 접종률도 75%에 불과하다. WSJ는 “반백신 풍조가 보건당국에 대한 불신과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며 “게다가 빈곤, 불규칙적인 백신 공급, 배급망 미흡 등까지 더해져 질병 위험이 계속 악화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런 현상은 루마니아만의 일이 아니다.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이 2016년 67개 국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론이 가장 강한 나라 10곳 가운데 7곳이 유럽 국가였다. 지난달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부는 자녀의 유치원 등록 시 예방접종 증명서를 제출토록 한 제도의 시행을 1년간 유예키로 했다. 우크라이나에선 2007년 97%였던 백신 접종비율이 2016년 42%로 급락했고, 그 결과 올해 3만건의 홍역 감염(13명 사망)뿐 아니라, 소아마비나 디프테리아 등의 발병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유럽 전체의 홍역 환자는 지난해 2만 4,000여명이었고, 올해 상반기엔 무려 4만 1,000여명으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커다란 우려를 보내면서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아시 내 한 병원의 병원장인 미흐네아 허머자흐는 “수개월 전 홍역 백신을 맞지 않아 숨진 3세 어린이의 부모에게 ‘평생 부담을 느끼실 것’이라고 하니, 그들도 ‘다른 자녀들에겐 백신을 맞히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모는 자녀의 백신 접종 여부를 결정할 때, 자녀의 생사를 정하는 힘도 갖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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