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실망이 된 김명수호 사법개혁
사법농단 대처 잘못으로 리더십 흔들
이제라도 사법적폐 청산 적극 나서야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한 게 3개월 전이다. 일반사건 수사라면 압수수색부터 기소까지 이뤄지고도 남았을 법한 시간이다. 하지만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법원행정처의 자료제출 거부, 서울중앙지법의 압수수색영장 줄기각이 검찰 발목을 잡았다.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이 통상 90%인데, 사법농단 관련 압수수색영장은 기각률이 89%다. 사유도 사건에 대한 예단이나 추측에 터잡거나 새삼 깐깐한 발부 기준을 내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정상적이다.

부장판사인 영장전담 판사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여론의 비판을 감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조직 보호가 거론된다. 고위 법관들 사이에는 법원 문제 해결을 외부, 특히 검찰에 맡긴 데 대한 불만 기류가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압수수색영장 줄기각은 메시지 하나를 더 내포한 듯하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일정선’에서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문 같은 것이다. 유독 의혹의 핵심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윗선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일정선’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이런 비정상적 행태를 김 대법원장에 대한 법원 기득권 세력의 ‘무언의 시위’로 분석한다. 희한한 것은 이를 대하는 김 대법원장의 태도다. 사법적폐 및 그 세력과의 단절이 소임인데도 그는 어떤 대응 조치도 않고 있다. 무대응 기조는 적폐의 발호와 리더십 훼손으로 이어질 텐데 김 대법원장의 침묵은 길어지고 있다. 왜일까.

김 대법원장은 1년 전 취임 당시 사법개혁의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 없이 재판 업무만 맡아온 이력과 진보적 성향이 사법개혁의 기대를 키웠다. 실제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 법관회의 상설화, 대법관 후보추천 불개입 등을 현실화시켰다. 하지만 그의 1년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사법개혁 의지가 안 보인다’ ‘존재감이 없다’는 말들이 공공연하다. 그에 대한 실망과 평가절하는 두말할 필요 없이 사법농단 등 사법적폐 청산에 대한 미온적 태도에 기인한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추가조사위ㆍ특별조사단 조사 등 법원 내부에 의한 사태 해결에 매달렸다. 그도 천생 법원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 검찰에 손을 내민 6월까지 무려 9개월을 허비했다. 더구나 두 차례 ‘셀프조사’ 는 화를 더 키웠다. 하창우 전 변협회장 사찰 등 범죄혐의가 포착됐지만 김 대법원장은 수사 의뢰 등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이 “고발할 정도가 아니다”는 특별조사단 결론도 수용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드러나는 사법농단 의혹은 법원 자체 조사 결과나 김 대법원장 판단과 180도 달랐다. 더구나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의 관련자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출 거부를 방조하는 등 무기력증을 드러냈다. 그 사이 사법신뢰는 급전직하했다. 그를 환영했던 진보 진영의 비판은 날카로워졌다. 5일 국회 법원개혁 토론회에서는 “법원 개혁의 현실이 암담하다. 모든 작업과 지향들을 주도하고 지휘해야 할 그 어떤 사령탑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탄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김 대법원장이 행동으로 답할 때가 됐다.

국민에겐 압수수색영장 줄기각이 노골적 수사 방해로 비치지만 대법원장의 직접 개입은 어렵다. 법관 독립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김 대법원장이 처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법행정의 전권을 쥔 대법원장이라면 큰 차원에서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판사 임용 자격이 있는 외부인사로 특별재판부를 구성, 사법농단 사건을 전담케 하는 방법이 그중 하나다. 그래야 각종 영장심사를 포함,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맡게 될 법원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 개혁 대상인 법원행정처를 사법개혁 작업에서 배제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기존 사법발전위를 해체하고 법원 바깥에 과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같은 조직을 꾸려 사법개혁을 맡겨야 한다는 요구에 주목해야 한다. 김 대법원장의 긴 침묵이 큰 결단의 전조이길 바란다.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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