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6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삼성은 이틀 뒤인 8월 8일 '3년간 180조원 투자, 4만명 신규고용'을 골자로 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삼성그룹이 3년간 180조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을 때, 문득 과거 투자계획들은 제대로 집행됐는지 궁금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에 10년간 23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고, 2013년엔 한 해 48조원 가량을 투자하겠다고도 했었다.

삼성의 대답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였다. 예전처럼 그룹을 총괄하는 미래전략실이 있지도 않고, 계열사마다 국내외 투자가 산재해 있어 정확히 구분하기도 어렵다는 거였다. ‘그럼 검증할 방법이 없는 거냐’는 질문에 삼성 관계자는 역시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근 5년 만에 대기업들에게 다시 ‘투자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작년말 LG그룹을 시작으로 현대차, SK, 신세계, 삼성, 한화, GS그룹에 이어 최근 포스코까지 대기업들이 줄지어 발표한 계획을 합치면 향후 3~5년간 투자는 400조원, 신규고용은 23만명에 가깝다.

누구 하나 내놓고 시킨 적 없는 계획이 비슷한 시기에 우르르 쏟아지는 건, 사실 우리 정도 경제 수준의 나라에서 우스꽝스런 일이다. 이유는 대개가 짐작하는 바대로다. 정권이 바뀌고, 대대적인 경제 살리기 캠페인이 이는 와중에 대기업의 맞장구가 필요한 정부가 눈짓을 보낸 것이다.

그렇다 해도 대기업이 앞장서 투자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없다. 투자는 곳곳에 공사를 일으키고 임금으로 지급되며 소비로 돌아온다. 계획대로 꾸준히만 해 준다면 말라가는 경제에 단비가 된다. 하지만 과연 기업들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는 걸까.

지난 정부 초기이던 2013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대 그룹 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모았다. 이 때는 지금보다 좀 더 노골적이었다. 정부는 이 만남을 앞두고 그 해 대기업들의 투자 실적과 계획을 집계해 발표했다.

“연초 약 149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던 30대 그룹의 상반기 투자 실적(약 62조원)이 1년 전 같은 기간(약 69조원)보다 10.4% 줄었다. 2012년에도 연간 151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투자는 138조원에 그쳤다”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면박을 줬다. 그러면서 “정부가 올해 투자 계획을 다시 집계해 보니, 30대 그룹 투자(약 155조원)는 연초 계획보다 4% 늘었고 이는 전년 실적보다 12%나 늘어난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산업부는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총수들에게 “밝히신 계획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당부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듬해부터 대기업들은 하나 둘 정부의 투자 간담회 호출을 피하기 시작했다. 집행 실적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대기업 투자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대통령도 알기 어렵다는 얘기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요즘은 그나마 재계 스스로 밝히던 투자 계획과 실적 발표마저 사라졌다. 매년 초 30대 그룹의 투자 동향을 집계해 발표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작년부터 발표를 중단한 상태다. 비록 대기업들 스스로의 계산을 받아 더하는 단순집계였지만, 제한적으로나마 투자 실적을 사후에 확인해 볼 길조차 이젠 없는 셈이다.

대기업이 시키지도 않은 투자 계획을 주기적으로 발표하게 만드는 건, 그로 인해 소비ㆍ투자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발표만 있고, 검증은 없는 투자만 반복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십조원대 투자 발표에도 ‘안 하면 그만인데 어떻게 믿겠냐’는 비아냥이 심심찮게 들리는 건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기업 자율로 하는 일에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면 최소한 자율공시라도 유도해 보는 건 어떨까. 결과를 믿지 못해, 갈수록 감흥이 떨어지는 투자계획 발표는 그만 되었으면 한다.

김용식 산업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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