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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초등돌봄 절벽’이 앞에 있는데

입력
2018.09.06 10:22
수정
2018.09.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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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ㆍ고령화가 무조건 사회문제만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1인당 노동생산성 향상, 여성취업활동인구 비중의 확대, 65세 이상인 노인 개념의 상향 조정 등 대책으로써 저출산ㆍ고령사회의 인구부양부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게다가 개인의 선택으로 출산 기피를 문제로 보는 접근은 자칫 출산 주체로서 여성을 비난의 대상으로만 만들 수 있다. 출산 장려나 저출산 극복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시도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이울음소리가 한국에서처럼 급속도로 사라진다면 여기에는 분명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구조적 요인이 있는가?

일단 남녀가 함께 살아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청년세대가 이런 생애 과정을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갈 정도로 안정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치솟는 주거비용은 일자리 효과 조차 상쇄시킨다. 어떻게 아이를 낳았다 해도 임신ㆍ출산ㆍ돌봄과 자녀교육 비용이라는 거대한 산이 앞을 막는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부모 본인의 노후를 걱정할 정도로 돌봄ㆍ교육 비용부담 수준이 높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삶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의 몫이다. 여성만 경험하는 독박육아, 경력 단절, 성별 임금 격차, 유리 천장 등이 바로 그 예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 가족의 삶이 갖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또한 그 규모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출산 기피를 선택하게 된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녀 출생과 연관된 미래 예측 불확실성이 모여서 사회적 차원의 저출산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을 최근까지 0~5세 대상 보육시설 확대가 해소했다.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오후 늦게까지 맡길 곳이 생겼기 때문에 경력 단절 없이 일ㆍ가정을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이를 낳았을 경우에 취업활동을 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른바 ‘초등돌봄절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ㆍ유치원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 빨리, 오후 1시부터 아이를 맡길 곳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남는 건 엄마의 경력 단절이다. 통계상 여성 경력 단절의 주요인은 결혼과 영ㆍ유아기 돌봄이다. 반면 초등학교 입학 이후 교육 요인 비중은 낮다. 그러나 버텨봤자 예상되는 초등돌봄절벽이 출산 직후 경력 단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는 순간 경력 단절을 하게 되는 엄마의 상황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효과는 너무 강렬하다. 수많은 여성이 그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출산 포기를 할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어릴 때에는 아이가 가능한 한 일찍 집에 가서 부모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목소리도 높다. 여기에서 부모는 결국 엄마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돌아간 집에 엄마는 없는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 경력 단절이라는 말 자체가 없던 시절과는 다른 변화이다. 이 변화를 외면하고 학교는 가르치는 곳일 뿐 돌보는 곳이 아니라며 언제까지 뒤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학교는 배우기만 하는 곳이었다. 스승과 제자만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앞을 바라본다면 스승과 제자 외에,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와 그들을 돌보는 어른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장소로 변할 수 있다. 그렇게 학교가 변하려면 학교 환경 개선과 교사 업무 부담 완화 등 많은 대책을 당연히 앞서 해야 한다. 학교가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사회적 돌봄체계가 완성되면서 출산 이후 부모가 갖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초저출산 현상에서 한국사회가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렇게 생겨날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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