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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가라…축구선수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

입력
2018.09.08 10:00
수정
2018.09.08 10:5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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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1

의류 소재 양털로 만든 신발 역발상

온라인 펀딩 사흘만에 12만달러 몰려

#2

재료 재생 전문가와 신발업체 창업

연구 거듭해 양털서 섬유 추출 성공

#3

뛰어난 디자인, 착화감에 선풍적 인기

구글 창업자 페이지 등 유명인 ‘잇템’

올버즈 창업자인 팀 브라운(왼쪽)과 조이 즈윌링거가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갑내기인 이들은 둘 다 신발회사와는 거리가 먼 이력을 갖췄지만 한 팀을 이뤄 양털신발로 히트를 쳤다. 올버즈 제공
올버즈 창업자인 팀 브라운(왼쪽)과 조이 즈윌링거가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갑내기인 이들은 둘 다 신발회사와는 거리가 먼 이력을 갖췄지만 한 팀을 이뤄 양털신발로 히트를 쳤다. 올버즈 제공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world‘s most comfortable shoe)’이라는, 신발 제조사엔 최상의 찬사를 일상처럼 듣는 회사가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신발 제조사를 떠올렸다면, 틀렸다. 그 주인공은 2015년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문을 연 스타트업 ‘올버즈(Allbirds)’다. 미국 주간지 타임이 이 회사의 첫 출시작을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라 평한 것이 2016년 3월이었는데 이 표현은 이후 올버즈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회사 설립 3년을 향하던 지난 5월에도 미국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은 어떻게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도전적인 상대가 됐나’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벤처회사의 천국이라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신발과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 큰 성공을 거둔 회사는 극히 드물다. 올버즈의 성공 비결은 신발에 첨단 소재기술을 가미한 것이다. 양털에서 뽑은 섬유 ‘메리노울’을 이용해 신발을 만든 것인데, 의류 소재로 쓰이는 울로 신발을 제작하는 역발상은 올버즈가 처음이었다. 편안함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까. 올버즈는 ‘양털 신발’을 신은 한 달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아홉 번 이상 들지 않으면 환불해주겠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도 했다.

양털 신발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이 회사 창업자 팀 브라운(37)이다. 팀은 뉴질랜드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성공한 축구 선수 출신이다. 팀의 아이디어는 공동 창업자인 재생 에너지 전문가 조이 즈윌링거(37)를 통해 실제 상품으로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신발 회사와는 거리가 먼 이력을 가진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신발계의 애플’이란 별칭을 올버즈에 안길 만큼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두 사람의 경영 행보를 시장은 비상한 관심 속에 주목하고 있다.

올버즈 매장 전경. 올버즈는 종업원과 손님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매장을 ‘바(bar)’ 스타일로 꾸몄다. 올버즈 제공
올버즈 매장 전경. 올버즈는 종업원과 손님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매장을 ‘바(bar)’ 스타일로 꾸몄다. 올버즈 제공

신발회사 CEO가 된 축구선수

1981년 영국에서 태어난 팀은 뉴질랜드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아마추어 축구팀에서 활약했다. 2001년 미국 신시네티대에 진학해 디자인을 전공하며 학업과 축구를 병행한 팀은 재학 시절 뉴질랜드 국가대표로 발탁될 만큼 재능 있는 축구 선수였다. 졸업 후 선택한 첫 진로도 축구였다. 미국 리치먼드 키커스(2004~2006), 호주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FC(2006~2007), 뉴질랜드 웰링턴 피닉스(2007~2012)에서 프로 선수로 활약했고, 뉴질랜드 국가대표(2004~2012)에서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부주장을 맡는 등 두각을 보였다.

팀은 축구 선수로 뛰면서 신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국가대표나 프로팀 선수로 활약하는 동안 여러 회사로부터 후원 받은 다양한 제품을 접하면서 신발 디자인, 소재, 나아가 제조 공정에까지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12년 은퇴한 팀은 축구 지도자 과정을 밟는 대신 그간 꿈꿔 왔던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물론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팀은 축구 선수로 뛰던 시절에도 인생의 2막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팀은 은퇴 이듬해인 2013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경영대학원과 영국 정경대(LSE)로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올버즈의 초기 모델을 구상한다. ‘어떻게 하면 편한 신발을 만들 수 있을까’란 질문을 반복하던 그의 머릿속을 ‘양털로 신발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스쳤다. 사람(475만명)보다 양(2,900만 마리)이 많은 뉴질랜드에서 자란 팀이 합성 소재 대신 천연 재료로 친환경 신발을 만들고 싶다고 희망했을 때 어릴 적부터 친숙한 양이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최고급 의류 소재로 쓰이는 울로 신발을 만들겠단 팀의 아이디어는 많은 이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팀이 2014년 미국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킥스타터(Kick Starter)에 본인의 사업 아이디어를 올리자 사흘 만에 12만달러(1억3,400만원)의 투자금이 몰려 들었다. 킥스타터는 전세계 크라우드펀딩 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큰 회사로, 개인이 상품 아이디어와 개발 완료 예정 시점 등을 올리면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회원이 후원자로 나서는 시스템이다.

자신의 구상이 시장에서 인정 받았다는 점에서 기뻐할 법도 했지만, 당시 팀은 그러질 못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실제 상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지식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최고의 사업 파트너는 그때 팀 앞에 나타났다. 바로 올버즈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조이 즈윌링거다. 조이는 재료 재생 전문가로 당시 해조(海藻)에서 뽑아낸 해조유(기름)를 개발해 상업화하려 애쓰던 중이었다. 하지만 원가 경쟁력에서 밀려 상품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꿈을 향해 나아가던 두 사람을 이어준 건 팀과 조이의 아내였다. 이들은 미국 다트머스대 재학 시절 룸메이트였는데, 자신들의 남편이 서로 통하는 게 있을 거라고 보고 연결해준 것이다.

팀은 사업 경험이 있는 조이에게 조언이나 들어볼 생각으로 캘리포니아를 찾았다. 동갑내기인 팀과 조이는 의외로 잘 통했고 그 자리에서 팀을 이루기로 결정한다. 친환경 상품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강했던 팀은 “제품만 놓고 볼 때 합성 섬유로 만들어지는 신발이 환경의 가장 나쁜 범죄자”라고 말하는 조이에게 확 끌린 것이다. 두 사람은 신발 소재에 사용할 수 있는 양털 직물을 만드는 일에 의기투합했다.

매장에 진열된 올버즈 신발. 올버즈 신발의 가장 큰 특징은 심플함인데 신발엔 로고도 달려 있지 않다.
매장에 진열된 올버즈 신발. 올버즈 신발의 가장 큰 특징은 심플함인데 신발엔 로고도 달려 있지 않다.

세계 첫 양털 신발 만들다

두 사람의 열정에도 양털을 신발 소재로 딱 들어맞게 가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털에서 뽑은 울은 구김이 잘 가지 않고 신축성도 좋지만 문제는 비용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울의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용을 낮추는 게 관건이었다. 둘은 연구를 거듭하던 끝에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한 공장에서 원하던 섬유를 만들 수 있었다. 다음 순서는 투자 유치였다. 자금이 절실한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상대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시간 동안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핵심을 소개하는 것을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라고 하는데, 조이는 엘리베이터 피치 때 “우린 5,000달러짜리 슈트에서 사용되는 메리노 울에서 머리카락 굵기의 20% 밖에 안 되는 얇은 실을 제작했고, 그 실로 만든 신발은 단연 위대한 신발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팀과 조이는 2015년 8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올버즈를 세운다. 올버즈는 탐험가들이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온통 새만 있는 걸 보고 ‘All birds’라고 했던 데서 유래된 말이다. 올버즈는 이듬해 3월 양털 신발을 처음 선보였고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뛰어난 착화감, 95달러(모든 상품 동일)의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한 올버즈 제품은 온라인에서 출시되자마자 매진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나이키처럼 커다란 로고가 박혀 있지 않은 울버즈 신발은 세탁기에 넣고 빨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다른 신발들과 달랐다.

올버즈는 친환경을 경영 전면에 내세웠다. 올버즈 홈페이지엔 ‘대자연이 우릴 탄생시켰다’란 슬로건이 게시돼 있다. 간판 제품인 양털 신발은 제조 과정에서 다른 합성소재 신발에 비해 훨씬 적은 물을 사용하고 이 물을 다시 재활용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후속 상품 역시 모두 친환경 소재를 택했다. 유칼립투스를 이용한 신발,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거품으로 만든 신발이 바로 그것이다. 올버즈 언론 담당자는 “친환경 제품에서 회사 미래를 찾고 있단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올버즈 신발은 스타트업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 딕 코스톨로 전 트위터 CEO도 이 회사 신발을 즐겨 신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벨리에서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양털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벤처캐피털 회사가 캘리포니아에서 스타트업 관계자 1,000여 명이 참석한 행사를 열었는데 참석자들이 가장 많이 신고 있는 신발이 바로 올버즈 스니커즈였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 출신의 데이브 모린은 올버즈를 향해 “소재 과학과 꿈에 투자할 최적의 회사”라고 치켜세웠다.

올버즈는 상장사가 아니어서 판매량을 따로 공시하지 않는다. 다만 회사는 지난 3월 2016년 첫 제품 출시 이래 100만켤레 넘는 신발을 팔았다고 발표했다. 올버즈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캐나다 토론토 3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신발을 팔기 때문에 많은 매장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올버즈는 우리나라 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발 소재에 들어가는 섬유는 이탈리아 산이지만, 신발 생산은 한국 공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올버즈의 혁신 행보

많은 전문가들은 올버즈가 일으킨 신드롬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회사가 보여준 제품 혁신, 환경을 대하는 자세 등은 회사 성장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될 거란 것이다. 올버즈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뜻하는 ‘B기업(Benefit Corporation)’ 인증을 받은 점도 경영상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칼 울리히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는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올버즈는 제품뿐 아니라 기업 운영 자체가 매우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공동창업자 팀과 조이의 목표는 친환경 소재를 계속 만드는 것이다. 올버즈가 양털 신발에 만족하지 않고 나무, 사탕수수 등 자연에서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 신제품을 내놓는 이유다. 이쯤에서 그들이 회사 이름을 올버즈라 지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탐험가들이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방에 새들이 즐비한 진풍경에 놀랐듯이, 올버즈 역시 소비자들이 경탄할 만한 새로운 신발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닐까. 올버즈의 혁신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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