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4일 새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를 찾아 “기업이 원하는 법이면 다 악법이고 가치가 없는 것이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8월 국회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과 서비스발전기본법 등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혁신 관련법을 하나도 처리하지 못한 채 문을 닫자 허탈감과 무력감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이날 국회 방문이 20대 국회에서만 9번째라며 “매번 ‘지금이 (경쟁력 회복의) 골든타임’이라고 외쳤지만 외면했다”고 했다. 박 회장의 하소연에 의장단과 여야는 적극 협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을 밥먹듯 어긴 게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였으니 전혀 미덥지 않다.

박 회장이 ‘정치권 지도부에 전하는 부탁 말씀’이라며 내놓은 우려와 바람은 말 그대로 절실하다. 툭하면 ‘대기업 좋은 일’ 운운하며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이젠 그런 낡은 그림을 바꿔야 한다는 게 첫째다. 격차 해소 및 복지 등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업이 큰 몫을 담당해야 하는 만큼 정치가 입법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단기 이슈나 정책에선 찬반 논란을 피할 수 없지만 거기에 매몰돼 우리 주력산업이 (중국 등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법안이 1,000개 넘게 나왔는데 지원 법안은 300여개인 반면 규제 법안은 700여개”라고 지적했다. 그가 더 한탄한 대목은 규제 법안의 신속한 입법절차와 달리 지원 법안은 건건이 벽에 부닥쳐 좌초한다는 점이다.

박 의장이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으니 그의 얘기는 충분히 가감해서 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나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개선을 위해 4년 동안 40번 가깝게 과제를 전달했으나 대부분 해결되지 않았다”며 “문제는 다 나왔으니 이젠 답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 경제의 생산성 및 경쟁력 제고는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의 생존 문제로 부각됐다. 정치권이 숲을 보지 못한 채 낡고 늙은 논리로 혁신의 발목을 잡으면 다음 세대는 중국인의 발을 씻어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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