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불안하다’ 전문가 좌담

#하루 36명 꼴 스스로 목숨 끊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3배 많아
日, 지자체서 자살 고위험군 관리
#정신질환 범죄, 일반인의 절반 수준
적절한 치료 동반땐 관리 가능해
사회적 분위기 바꾸고 법 개정을

한국인의 26.6%는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자살은 10만명당 25.6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이에 지난 6월부터 한국일보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한국인은 불안하다’는 주제로 진행한 공동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좌담회를 마련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무실에서 권준수 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을 비롯해 정유숙 여성특임이사(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준호 법제이사(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명수 홍보이사(연세라이프정신건강의학과 원장)가 조현병과 여성 정신건강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정신질환과 자살의 증가는 불안한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라며 “불안을 줄이기보다 여유 있게 받아들이도록 튼튼한 자아를 키우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줄지 않아 ‘자살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이명수= 우리 사회의 자살문제가 정말로 심각하다. 2016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면서 한 해 1만2,140명이 목숨을 끊는다. 같은 해 교통사고로 4,292명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3배나 많은 셈이다. 자살은 개인의 정신과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경찰청이 2016년 자살 동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36.2%가 정신과적 문제로 가장 많이 자살했고, 경제생활문제(23.4%), 육체적 질병 문제(21.3%), 가정 문제(8.9%),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3.9%)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우울감이나 우울증은 자살을 유발하는 큰 요인이기에 우울증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자살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자살예방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권준수= 최근 자살예방을 위한 국회포럼도 구성됐고,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자살예방을 위한 생명존중 민관협의체도 만들어져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자살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다만 자살예방대책이 나열식으로 진행돼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려면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살시도자 등 고위험군을 우선적으로 관리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는 점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겠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우울은 치료 가능하고, 자살은 예방 가능하다’는 것을 자살예방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대한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율을 높이는 정책은 항상 중요하다. 얼마 전 정부가 개편한 정신치료 수가 방안은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최근 치료를 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경찰관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 등으로 인해 ‘조현병=위험한 질병’이라는 사회적 낙인까지 생겼는데.

최준호=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강력범죄 보도로 인해 ‘조현병포비아’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가 주로 보도되다 보니 ‘조현병=범죄자’라는 낙인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강력범죄는 일반인 범죄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대검찰청과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5년 강력범죄의 경우 전체 범죄자는 인구 10만명당 68.2명이고, 정신질환을 가진 범죄자는 10만명당 33.7명이다. 숫자로는 전체 강력범죄자는 3만5,139명이고, 이 가운데 정신질환자는 781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일부 사람이 정신질환자의 일반 범죄율은 정상인의 10분의 1 정도로 낮지만 강력범죄율은 일반인의 7~10배라는 주장을 편 적이 있지만 이는 통계 해석의 오류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싶다.

이명수= 정신질환에 잘못된 낙인을 찍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요인은 대중 매체다. 이런 점을 잘 고려해 매스 미디어에서는 보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조현병 환자들의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질 때 수십 명의 언론인과 전화 또는 직접 인터뷰를 했다. 아직 조현병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언론인이 적지 않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자주 묻는 질문들을 중심으로 매뉴얼을 개발해 보급할 예정이다. 학회 차원에서 언론대응 핫라인도 마련해 객관적이고 바람직한 언론보도가 되도록 적극적인 조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로서는 언론인이 조현병 관련 기사를 쓸 때 되도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자문을 받기를 권한다. 그것이 특정 대상군을 사회의 희생양, 욕받이로 만들 수 있는 예민한 주제일 때는 더욱 그렇다.

권준수= 조현병 환자의 입원을 제한하고 퇴원을 촉진하고자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인해 반드시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마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퇴원 이후에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를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가 모두 떠안은 상황이다. 자칫 평생을 질환에 압도돼 살아야 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할 수 없다.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고 돕기 위해서는 국가적 관심과 재정확대뿐 아니라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이 절실하다.

올 상반기 우리 사회 최대 화두의 하나가 ‘미투 운동’이었는데.

정유숙= 미투 운동으로 그동안 묻혀 있었던 젠더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뀐 것은 긍정적인 면이다. 젠더폭력은 불평등한 관계에서 발생해 약자의 인권과 자유를 유린하는 폭력의 한 형태로 분명한 범죄행위다.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젠더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직장 내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넘어서는 실제적이면서도 꾸준한 교육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정규 학교 교과과정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젠더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보호와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해바라기센터’와 같이 통합적 원스톱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안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밖에 미투ㆍ위드유의 부작용으로 다른 젠더를 기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펜스 룰’을 내세워 아예 이성간 교류를 차단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학회도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되도록 예방과 상처회복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사회ㆍ정리=권대익 의학전문기자

한국일보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지난 6월부터 ‘한국인은 불안하다’ 주제로 진행한 공동기획을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ㆍ정유숙 이사, 권준수 이사장, 최준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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