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철저한 기수(期數) 사회다. 먼저 온 사람이 고참이 되지만, 뒤에 온 신참도 ‘짠밥’이 되면 저절로 고참이 된다. 반면 소년원에서는 기수가 아무 쓸 데 없다. 싸움 잘하고 깡다구가 있는데다가 그 세계의 연줄이 있으면 입원하자마자 ‘대빵’이 될 수도 있고, 힘이 없으면 퇴원을 할 때까지 ‘쪼다’로 지내야 한다.

나는 소년원에서 가장 연령이 높은 축이었지만 나보다 뒤에 입원한 어린 대빵들에게 북어처럼 맞았다. 명색이 나도 폭력범인데 장래에 조폭이 될 어린 대빵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들에게 있고 내게 없었던 것은 ‘커리큘럼’이다. 비유하자면 걔들은 군인을 장래 직업으로 선택한 ‘사관학교 생도’였다. 걔들은 15세부터 선배들에게 야산으로 끌려가 목만 내놓은 채 흙구덩이에 파묻히는 극기 훈련을 거쳤다. 거기다가 병오는 레슬링으로 이름난 중학교의 레슬링 선수였다. 대빵에게 맞고 나서 안색이 밝지 않고 시무룩하면 더 맞았다. 그런 저항적인 태도는 피해자다움, 즉 ‘피해자성’에 어긋난다.

김해소년원에서 지낸 1년 6개월 중에서 1년 3개월을 ‘신발딱’(신발당번)으로 지냈다. 대개 한 반에 4명 이상씩의 대빵이 있었는데, 신발딱은 그들의 신발을 간수해야 했다. 원생마다 원에서 지급한 운동화 두 켤레와 고무신 한 켤레가 있었는데, 대빵들은 축구할 때 신는 운동화, 면회갈 때 신는 운동화, 쪼다들의 얼굴을 짖이길 때 신는 운동화 등 온갖 명목의 신발이 따로 있었다. 신발딱은 대빵의 신발을 항상 깨끗하게 털고 빨아 놓아야 했다. 첫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민음사,1987)에 나오는 ‘불타는 집’은 한 겨울에 대빵들의 운동화를 쌓아놓고 빨았던 그때의 경험을 쓴 것이다.

소년원에서는 저녁마다 복도에 내놓은 텔레비전을 단체로 시청하는데, 나는 책을 읽느라 혼자 실(室)에 남는 날이 많았다(원래는 규칙 위반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 시청이 한창인 중에 소년원의 최고 대빵이자 내가 속한 반의 대빵이기도 한 박무지가 열서너 살 정도 되는 타 반의 애를 데리고 왔다. 그날 나는 재수 없이 대빵이 ‘후장딱(후장당번)’을 잘 비역할 수 있게 망을 보는 파수꾼이 되었다. 이 누추한 경험은 두 번째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민음사,1988)에 ‘하얀 몸’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군법에서와 같이 소년원에서도 비역을 한 가해자와 비역을 당한 피해자를 함께 처벌한다(소년원 법규를 보지는 못했지만, 소년원 선생들이 그렇게 을러댔다). 저런 악법은 실재 벌어지고 있는 동성간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소년원 당국의 무사고주의(無事故主義)를 위한 것이다. 소년원 당국은 저 조항을 통해 사력을 다해 자신의 항문을 지켰던 피해자의 항문만 지켜주겠다고 명시한 것이다. 남성의 항문은 지켜주지만, ‘여성화 된 항문’은 지켜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서너 살 밖에 안 된 애가 스무 살이나 먹은 무지막지한 대빵에게 대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다가 피해자도 같이 처벌한다는데 누가 신고를 하겠는가. 이렇게 해서 매일 성폭행이 일어나는 데도, 소년원에서는 그런 일이 한 건도 없었던 것이 된다. 유의할 점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여자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던 대빵들은 모두 이성애자들이었다. 비역은 50퍼센트의 성적 욕망 해소와 50퍼센트의 남성성과 권력 과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번 칼럼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워마드의 상상된 기원이다. 워마드를 ‘여자 일베’라거나 일베와 적대적 공생을 하는 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워마드의 상상된 기원은 그 동안 여성을 주변화시킨 민족해방 투쟁ㆍ노동 운동ㆍ민주화다. 일베가 기원이 아니기에 일베가 없어지면 워마드도 따라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남성의 자존심ㆍ정체성ㆍ고뇌ㆍ실존은 ‘나는 안 맞았다’라는 정도에 통째 걸려있다. 그러나 진정 저 가치들을 알려면 남성도 어느 누구나 밤길을 걸을 때 여성이 느끼는 것과 똑같은 것을 느껴봐야 한다. 남성도 여성처럼 성폭행 당할 수 있는 종(種)이 되면 그때서야 알게 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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