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나와 홀로서기… 밴드 모집 공고 내고 길거리 공연까지

아이돌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 지난해 YG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그는 록밴드 사우스클럽을 만들었다. 사우스바이어스클럽 제공

‘기타, 드럼, 베이스, 피아노 연주 가능한 연주자만 메일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1월 온라인에 이런 내용이 담긴 록밴드 모집 공고문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흔한 밴드 모집 공고가 온라인을 달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성 댄스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함께 할 밴드 멤버를 직접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전자 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아이돌의 록밴드 모집 공고라니. 남태현은 2016년 겨울 돌연 위너와 YG엔터테먼트(YG)를 떠났다. 고 2때부터 YG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아이돌의 ‘일탈’이었다.

남태현은 당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았다. 그래서 밴드 모집 공고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내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물론, 밴드 지원 메일은 아니고 인터뷰 요청 내용이었다. “진짜요? 하하하. 그런데 그때 하도 팬레터가 많이 와 그 공고를 얼마 안 돼 내렸거든요.” 남태현의 말이다.

남태현을 지난달 28일 서울 부암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낸 뒤 1년여가 흐른 뒤의 만남이었다. 품이 매우 넓은 검은색 상의를 걸치고 샌들을 신고 나타난 청년은 ‘히피’ 같았다. 집에서 막 씻고 나온 듯 보였다. 남태현은 부암동에 산다. “김환기 화백의 유작을 전시하는 ‘환기 미술관’을 찾았다가” 동네의 운치에 빠져 이사했다고 한다. 남태현의 왼팔엔 지저분한 낙서를 예술로 승화한 유명 자유구상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낙서를 문화로 만들었잖아요, 영감을 참 많이 받았죠.”

로커로 변신한 아이돌에게 록은 ‘패션’이 아니었다. 사우스클럽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낸 두 장의 앨범 ‘90’과 ‘20’은 1960~70년대 유행한 블루스록에 단단하게 뿌리를 뒀다. 끈적이면서 때론 거친 블루스 기타 연주와 남태현의 무심한 듯 음울한 목소리가 차지게 엮여 장르의 야성적 멋을 제법 우려냈다. 록밴드 롤링스톤스와 도어즈를 좋아한다는 남태현의 오른쪽 팔목엔 기타의 한 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기타 이펙터를 만지고 있는 남태현. 그의 오른쪽 팔에 기타 연주할 때 쓰는 한 코드가 새겨져 있다. 사우스바이어스클럽 제공

다음은 남태현과 나눈 일문일답.

-어떻게 옛 블루스 록을 연주할 생각을 했나.

“기타를 배우면서 블루스 록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도어스와 롤링스톤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재즈처럼 즉흥적이지 않나. 그게 매력이었다. 정해진 틀 없이 무대에서 자유롭게 표출하는 에너지에 끌렸다. 야성적이면서 섹시하기도 하고. 그걸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고.”

-기타를 배우게 된 계기는.

“21세부터 곡을 썼다. 컴퓨터로 전자음악을 작곡했는데, 악기를 다룰 줄 알면 작곡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피아노보다 기타에 끌리더라. 처음엔 F코드 잡는 것도 어려워 포기했다. 기타 배우기를 세 번 정도 포기했나. 그러다 다시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고비를 넘겼다. 그때 팔에 ‘세컨더리 도미넌트’ 코드를 문신으로 새긴 거다.”

-솔로로 활동할 수도 있었을 텐데.

“평소 앙상블에 애정이 컸다. 누군가와 함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다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밴드를 꾸려보니 혼자 음악 만들 때보다 훨씬 재미있더라. 밴드 멤버들이랑 같이 합주실에서 잼(즉흥연주)도 하고 그러다 악상이 나오기도 하니까. 그 라이브가 재미있어 앨범 녹음도 원테이크(중간에 끊지 않고 곡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녹음)로 갔다.”(남태현은 지난달 ‘리얼 라이브 난장’ 라이브 앨범도 냈다.)

-아이돌이었지만 밴드 신에선 이방인이나 다름없다.

“아이돌이란 색안경을 쓰고 날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처음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내가 만든 곡을 들려주니 그때야 같이 하겠다고 답을 주더라. 지금 밴드 멤버들(기타 강건구, 드럼 장원영, 베이스 남동현) 모두 그쪽 분야에선 유명했던 연주자들이었으니까. 지금 멤버들을 만나 운이 좋았다.”

-어떻게 직접 밴드 모집 공고를 낼 생각을 했나.

“나 혼자 밖에 없었으니까. 아무 연줄도 없었다. 그래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밴드 모집 공고를 낸 뒤) 처음엔 포기하고 솔로로 하려다 나중에 교회 지인 소개로 밴드 멤버들을 만나게 됐다.”

-밴드 명이 사우스클럽이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감독 장 마크 발레ㆍ2014)’에서 따왔다.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 7년을 살았다. 되든 안 되든 지르고 보는 그의 모습이 나랑 비슷하기도 했고(웃음).”

-길거리 공연도 했나.

“이태원에 살았을 때 집 근처 해외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 앞에서 기타를 메고 노래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악기를 차에 싣고 어디든 달려갔다. 멤버들에게 한 말이 있다. 버스킹을 ‘야외수업’이라고 표현했다. 대구의 수성못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수성못 공연 사전 신고를 하지 않아 경찰이 찾아와 쫓겨났다. 그걸 본 한 카페 사장님이 우리 가게 와서 연주하라고 해 다행히 즉흥 공연을 이어갔고. 그땐 미쳤었다(웃음).”

록밴드 사우스클럽. 맨 왼쪽부터 강건구(기타), 남태현(보컬), 장원영(드럼), 남동현(베이스). 사우스바이어스클럽 제공

-고생했겠다.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공연장을 빌려 공연할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거리로 나간 거다. 이태원의 한 바에서 아르바이트 할 생각도 했다. 사장님이 날 알아봤다. ‘진짜 가능하겠냐’고 물으시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사우스 바이어스클럽 대표다.

“YG에선 당연한 줄 알고 받았던 것들이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깨닫고 있다(웃음). 처음엔 사무실도 빚을 내 꾸렸다. 이태원 한 상가 지하였다. 당연히 방음이 안 돼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결국 나왔다. 대출받아 집 지하에 합주실을 꾸렸고. 중 3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혼자 은행 업무도 제대로 못 봤는데, 지금 많이 배우고 있다.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라 사람들이 못하지 않겠느냐고 해 더 기를 쓰고 하고 있다(웃음).”

-앨범 ‘90’에 실린 ‘라이어’ 가사가 재밌더라.

“어려서부터 연예 생활을 하다 보니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허언증인 분들이 적지 않더라. 그런 경험을 곡에 녹였다.”

-앨범 ‘20’에 실린 ‘왕따’는 본인 얘기인가.(남태현은 이 곡에서 “맞아 재수 없고 예민하고 까칠해”라고 노래한다. 이 앨범 마지막 곡이 ‘그로운 업’이다. 그의 성장 이야기처럼 들린다.)

“곡을 쓸 때 내 얘길 직설적으로 쓰는 편이다. 사랑 노래는 손발이 오그라들어 잘 못쓴다.”

-YG는 왜 나왔나.

“만들어진 삶에 저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장르,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록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그런지란 록 장르로 새길을 내고 싶었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어려서부터 배웠으니까(웃음). 원래 성격이 만들어진 길보다 비포장도로를 직접 뚫는 걸 좋아한다고 할까.”

-YG를 나와 록밴드도 하고 솔로곡도 내더라.(남태현은 지난 4일 신곡 ‘별’을 냈다. 신스팝 스타일의 전자 음악곡이다. 박근태가 작곡했고, 선우정아가 노랫말을 썼다.)

“혼자 노래를 할 때는 밴드에서 평소 내지 않았던 미성을 많이 쓰게 된다. 힘 빼고 편하게 부른 소리가 새로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본다. 선우정아는 2NE1의 ‘아파’ 노랫말을 써 그 때부터 좋아했다.”

-바빠 보인다.

“8월 일본에서 공연이 있고, 11월엔 태국에서 공연한다. 유럽도 돈다. 10월엔 서울 서교동 웨스턴브릿지홀에서 사우스클럽 단독 공연을 한다. 우드스톡이나 글래스턴베리 록페스티벌에도 서고 싶다(웃음). 아, 10월 중순엔 사우스클럽 새 앨범을 낸다. 6~7곡이 실린다. 지금은 블루스 록을 하고 있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할 예정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