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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그들만의 리그

입력
2018.09.04 18:35
수정
2018.09.04 18:5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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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명문대 인맥 중심의 공직사회에 쓴소리를 했다. “우리만의 리그를 만들면 국민의 소리를 듣기 어렵고, 자기 성(城)을 쌓는 우를 범하기 쉽다”는 충고다. 김 부총리가 기획재정부 수습 사무관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뒤늦게 페이스북에 올려 공개한 걸 보면, 이 사회 엘리트들에게도 고언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수습 사무관이라면 행정고시에 합격해 갓 공직을 시작한, 전도가 유망한 이들이다. 명문대 출신들로 이뤄졌을 이들이 소위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면 국민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 김 부총리의 말이 가볍지 않은 건 ‘리그’에 들지 않은, 이방인 같은 그의 경험 때문이다. 흙수저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비주류로서 회색 시절을 지나야 했다. 어느 사회나 학벌, 지역, 경력으로 이뤄진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건 부인 못할 현실이다. 하지만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마저 리그에 가담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어(造語)가 생겨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들만의 리그’ 인사 때문이다. 이명박ㆍ 박근혜 정부에선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성시경(성대-고시-경기고 출신)이란 조어가 유행했다. 지금은 캠코더(대선캠프-코드 맞는 시민단체-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란 말이 나돈다.

▦ 오바마 정권 초기 주요직은 노벨상 수상자, 퓰리처상 수상자, 로즈장학생까지 최고의 인재와 지성들로 채워졌다. 하버드대 총장 출신의 래리 서머스가 국가경제위원장을 맡는 등 4분의 1이 ‘하버드’의 것이었다. 경력까지 화려해 월가에서 은행잔고를 늘려온 이들도 다수였다. 초대 비서실장 람 이매뉴얼이 투자은행에서, 후임 빌 데일리는 JP모건에서, 다시 그 뒤를 이은 잭 루는 씨티그룹에서 경력을 쌓았다. 누가 봐도 직전 부시 정권은 무능한 열등생이었다. 서머스는 금융위기까지 초래한 부시 정권을 향해 ‘그보다 덜 사회과학 지향적일 수 없는 집단’이라고 야유했다.

▦ 인재들의 리그가 오바마의 변화와 개혁을 성공시킬 것이란 믿음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트럼프 정권의 탄생이었다. 진보적 언론인인 토마스 프랭크는 똑똑한 아이비리그 출신들의 특징을 소심함으로 정리했다. 겉으론 눈부셔 보이는 이들에게 개혁을, 시대의 난제를 맡긴 게 적격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인재들의 리그 속에서 오바마의 개혁은 표류했던 셈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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