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2경기장에서 열린 김일 선생 서거 3주년 WWA 세계프로레슬링대회 포에버 히어로 4차 대회에서 밥샙 선수와 이왕표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는 밥샙 선수가 승리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프로레슬링의 대부이자 ‘영원한 챔피언’ 이왕표 한국 프로레슬링연맹 대표가 담도암 투병 끝에 4일 64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1954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5년 김일 체육관 1기생으로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선수 생활 초기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키 190㎝, 몸무게 120㎏의 당당한 체격으로 ‘(하늘을) 나는 표범’이란 별명을 얻었다.

1980년 한국에 돌아와서는 ‘박치기 왕’ 김일의 같은 문하생이었던 역발산(본명 양승휘)과 함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뛰어난 순발력과 화려한 발차기를 앞세운 공중전의 달인인 고인과 큰 덩치에서 뿜어 나오는 괴력의 역발산이 태그매치를 이뤄 절묘한 호흡으로 일본 선수들을 물리칠 때면 TV 앞에 모인 국민들은 크게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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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야구와 축구가 프로화하면서 한국 프로레슬링이 점차 인기를 잃어가자 고인은 프로레슬링의 부흥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1990년대에는 로드 프라이스,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빅 자니 호크), 부커 T, 마이크 어썸 등을 꺾으며 ‘국제적 위상을 지닌 마지막 한국 프로레슬러’로 평가 받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종합격투기가 인기를 얻자 고인은 프로레슬링도 충분히 강하다며 도전장을 던졌다. 그의 나이 오십대 중반이던 2008년과 2009년, K-1 슈퍼스타 밥 샙과의 대결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각본 있는 종합격투기’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엔터테이너로서 판을 짜는 기획력과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한 대결이었다. 프로레슬링의 타격ㆍ유술ㆍ관절 기술을 연구 개발해 ‘격기도’를 창설, 대한격기도협회 총재로 재임하기도 했다. 이 기술은 2011년 출간된 ‘격기도 교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고인은 2013년 담낭암 판정을 받으며 위기를 맞았다. 워낙 큰 수술이라 유서까지 쓰고 수술실에 들어갔던 그는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왕성하게 활동했다. 프로레슬링 대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쉴 새 없이 전국을 돌았다.

환갑을 넘긴 2015년에는 은퇴 경기까지 추진했지만 건강 때문에 정작 링에 오르지는 못한 채 은퇴식으로 작별을 고했다. 은퇴 후에도 프로레슬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지만 최근 암이 재발하면서 치료를 받던 중 갑작스레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포츠 해설가이자 프로레슬링 선수인 김남훈은 4일 트위터를 통해 ‘영원한 프로레슬러 이왕표 회장님께서 오늘 아침 다른 세상의 링으로 원정을 떠나셨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 현대 아산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8일이다. 장지는 경기 고양시 청아공원.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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