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82곳만 실적… 서울 두자릿수로 줄어
시설비용, 인건비, 의료사고 등 부담에 기피
산모들 분만 병원 찾아 원거리 출산 고역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임산부 최모(27)씨는 지난해 4월 첫째 아이를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의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 당초 임신 진단을 받은 집 앞 산부인과에서는 “분만은 안 받는다”고 해 병원을 옮겼기 때문이다. 최씨는 “운전을 못하는 데다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만삭의 몸을 이끌고 진료를 다녔다”며 “힘들겠지만 내년 출산 예정인 둘째 아이도 같은 병원에서 낳아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저출산 영향으로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 현상이 심화하면서 지난해 분만 실적이 한 건이라도 있는 의료기관 수가 전국에 600곳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7 분만 심사실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 분만 실적이 1건이라도 있는 병원ㆍ의원 등 의료기관 수는 전국 582곳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산부인과 운영 의료기관이 전국 3,751곳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15%에 불과하다. 산부인과 7곳 중 1곳 정도만 분만 실적이 있는 셈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송정근 기자

산부인과 병원들의 분만 기피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분만 실적이 있는 병원은 전년보다 21곳(3.4%)이 줄었고, 1,119곳에 달했던 2006년과 비교하면 10년여 사이 절반 가량(48.0%) 급감했다. 지역별로 편차도 심하다. 의료기관 소재지 별로 살펴보면 세종이 2곳으로 가장 적었고, 울산 8곳, 광주 12곳, 전남ㆍ제주 각각 13곳 등이었다. 서울도 98곳으로 처음으로 100개소 이하를 기록했다. 분만 실적 기관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로 135곳이었다.

이처럼 분만 실적이 급감하는 1차적 원인은 저출산 현황이 심화된 데 있다. 비싼 돈을 들여 분만 시설을 갖춰봐야 저출산에 고객이 줄어드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러다 보니 전문의들은 분만 자체를 꺼리게 된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2012년 산부인과 전문의 5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28%(155명)가 처음부터 분만을 하지 않거나(27명) 분만을 하다가 그만뒀다(128명)고 응답했다. 전문의들은 분만시설을 유지하려면 3교대 분만실ㆍ신생아실 같은 인프라와 병동 간호사, 야간당직 의사, 마취과 의사, 지원인력 인건비가 들고, 의료사고 소송 위험도 높다는 점을 기피 요인으로 꼽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은 “분만실은 기본 입원료만 산정할 수 있고 상급병실 차액, 간호등급을 산정할 수 없다“며 “분만실을 특수병상으로 지정하고 정당한 수가를 신설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불편이 갈수록 커지면서 임산부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올해 초 분만을 안 받는 2곳의 산부인과를 거쳐 겨우 대형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정은영(34)씨는 “분만 병원을 찾기 쉽지 않다는 건 지방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정도의 차이만 있지 서울도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산부인과조차 없는데 자꾸 아이를 낳으라는 정부 정책이 모순됐다’ ‘분만할 병원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둘째 아이 낳을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등 조치를 요구하는 글이 여럿이다. 특히 고령 임산부가 증가하면서 유산ㆍ조산 등 위험성도 높아지는데도 분만 인프라가 부족해 불안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분만 인프라 복구를 저출산 정책의 주요 갈래로 보고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며 “단순히 의료계가 주장하는 분만 수가 문제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 강화 차원에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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