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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엘카노의 빅토리아호(9.6)

입력
2018.09.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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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 선단 5척 중 '빅토리아'호가 유일하게 세계를 돌아 1522년 오늘 스페인으로 귀환했다. 사진은 일본 나고야 항에 입항한 빅토리아 호의 1991년 복제선.
마젤란 선단 5척 중 '빅토리아'호가 유일하게 세계를 돌아 1522년 오늘 스페인으로 귀환했다. 사진은 일본 나고야 항에 입항한 빅토리아 호의 1991년 복제선.

1519년 8월 10일 스페인 세비야 항을 출항한 마젤란 탐험 선단의 5척 중 유일하게, 크기로 넷째인 ‘빅토리아(Victoria)호’가 1522년 9월 6일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을 거쳐 안달루시아 산루카르데 바라메다(Sanlucar de Barrameda) 항에 입항했다. 그로써 빅토리아호는 세계를 일주한 최초의 배가 됐고, 선장 후안 세바스천 엘카노(Juan Sebastian Elcano, 1486~1526)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최초로 세계를 돌아 귀환한 자’라는 의미의 라틴어 ‘프리무스 서컴데디스티 메 Primus circumdedisti me)’를 새긴 문장과 포상금을 받았다.

16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신항로 및 식민지 개척의 적대적 경쟁국이었다. 마젤란은 포르투갈 군인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경력을 쌓은 뒤 스페인 국왕의 신임을 얻어 탐험 선단을 이끌게 된 특이한 이력이 인물이었다. 모두 다섯 척, 산안토니오(120톤급), 트리니다드(110톤급), 콘셉시온(90톤급), 빅토리아(85톤급), 산티아고(75톤급)의 선장과 선원(군인)들은 모두 스페인 출신이었다. 선단이 브라질을 거쳐 ‘마젤란 해협’이라 불리게 된 칠레 남단 해협을 지날 무렵 거센 폭풍우에 산티아고 호가 난파했고, 산안토니오 호는 항로를 이탈했다.

무모한 항해에 분노한 선장들이 파타고니아 인근 해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마젤란은 그들을 진압하고, 소극적이던 엘카노는 5개월 노역형만 살려 일반 선원으로 남겼다. 세 척의 배로 계속 항해한 끝에 괌을 거쳐 필리핀에 당도한 마젤란은 막탄 섬 부족과의 전투 중 사망(향년 41세)했다. 전투와 영양실조, 탈수, 괴혈병 등으로 선원이 부족해진 선단은 콘셉시온 호를 버리고 2척으로 항해했고, 막판에는 파손된 트리니다드 호까지 버리고 빅토리아호만으로 귀향길에 올랐다. 귀향에 성공한 선원은 출항 인원 270명 중 18명(중도 승선자 제외)에 불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빅토리아호가 몰루카 제도서 구입해 싣고 온 정향 등 향신료의 값어치가 총 항해 비용을 제하고도 남을 만큼 높았다고 한다. 엘카노는 후속 탐사대의 일원으로 활약하다 태평양 선상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빅토리아호는 1570년 항해 도중 난파ㆍ실종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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