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영화 저널리스트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모더레이터, 즉 영화제의 GV(관객과의 대화)에서 게스트와 관객을 이어주는 일종의 사회자 같은 역할이다. 1년에 50편 정도 모더레이터가 되는 것 같은데, 모든 GV에 공평한 마음으로 임해야겠지만, 아주 조금은 마음이 더 가는 경우가 있다. 힘겹게 만든 첫 영화로 관객과 첫 만남을 가지는 감독들을 만날 때다. 그들에게 그 자리는 출발점이고, 나는 운 좋게도 그 역사적인 자리의 증인이 된 셈이다. 객관적인 진행자이어야 하지만, 이제 막 관객과 소통을 시작한 그들의 긴장한 얼굴을 보면 슬그머니 응원의 마음이 들고, GV를 마무리하면서 호소를 하게 된다. “오늘 첫 선을 보인 이 영화가 꼭 개봉을 해서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의 첫 관객인 여러분, 많이 도와주세요.”

가끔은 기적 아닌 기적이 일어난다. 영화제를 등용문 삼아 개봉까지 이어지는 경우다. 30분 정도 GV를 한 것이 인연의 전부인데도 기쁜 마음과 함께 한편으론 짠하다. 극장에 걸리기까지 나름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그러면서 다시 응원한다. 영화제라는 축제가 아닌 극장가라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도 관객들의 환호와 사랑을 받기를 말이다.

최근 개봉한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GV를 진행한 영화였다. 데뷔작을 만든 감독은 의외로 차분했고 침착했지만, 영화 자체는 묵직하면서도 관객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아들의 죽음에 관련된 아이를 거두는 부모의 심정. 영화는 그 쉽지 않은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쌓아가며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이 영화는 부산에서 국제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고 올해 베를린, 시애틀, 우디네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후 드디어 일반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이번 주에 개봉되는 ‘어둔 밤’은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영화다. GV는 시종일관 흥분된 분위기였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의 환호는 열광적이었으며, 심찬양 감독은 벅찬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듯했지만 살짝 들떠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에 영감을 받아 저예산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젊은이들의 ‘진지한 좌충우돌’인 이 영화는 부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을 수상했고, 1년여 만에 드디어 배급망을 탔다.

다음 주에 개봉되는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도 GV를 진행했던 영화다. 여학교에서 한 학생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드라마인데, 영화만큼 두 번의 GV 모두 그 밀도가 대단했다. 주연을 맡은 전여빈과 다른 배우들도 함께 했는데, 촬영 당시가 되살아나는 듯 그 생생한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했다. 부산에서 뉴커런츠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무주에서 뉴비전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신인 감독의 작품은 아니지만, 올해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만났던 ‘더 블랙’도 다음 주에 개봉된다. 베테랑 다큐멘터리스트인 이마리오 감독은 2012년 대선 직전에 일어난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을 긴 세월에 걸쳐 집요하게 추적했고, 정권이 바뀐 지금 그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다. 벌써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그 사건을 환기시키는 건, 과거의 진실에 대한 제대로 된 규명 없이는 올바르게 전진할 수 없다는 감독의 의지일 것이다.

관건은 생존이다. 점점 적자생존의 법칙이 공고해지는 극장가에서 과연 이 영화들은, 영화제에서 받았던 관심과 관객의 열기와 GV 때의 적극적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러기엔 우리의 상업영화 시스템이 기회를 주는 데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부디 이 영화들이 ‘살아남은 아이’가 되길 바란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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