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소송 ‘판짜기’ 주도
“박근혜 대통령, 비밀회동 지시” 김기춘 진술
‘전교조 판결’ 개입 여부도 조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주요 재판을 둘러싼 ‘물밑 거래’가 실행됐음을 뒷받침하는 진술과 증거가 속속 나오는 가운데 두 수장의 직접 개입 정황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들의 구체적인 지시ㆍ보고 여부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3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과 관련해 재판거래 ‘판짜기’를 주도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2013년 12월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이뤄진 청와대, 대법원, 외교부의 비밀회동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진술을 확보했다. 회동 이후 법원행정처 간부들과 외교부 간부들은 여러 해에 걸쳐 접촉하며 ▦피고 측 대리인단이 정부 의견서 제출을 재판부에 촉구하면 ▦외교부가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재판을 지연시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이전 판결과 다른 결론을 내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풀이된다.

2015년 1월 정부 등 참고인이 제3자 민사소송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한 법원행정처의 민사소송규칙 개정도 이 소송과 연관돼 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는) 이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며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할 것을 외교부에 지시했다는 청와대 참모진의 진술을 확보했다. 박 전 대통령은 “화해치유재단(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협정 결과로 피해회복을 위해 설립된 단체)이 설립되고 일본에서 돈(10억엔)이 들어오면 의견서 제출을 처리하라”며 구체적 시점까지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소송에 적극 관여한 것은 한일간 외교마찰 가능성 외에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체결한 한일청구권 협정의 근간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별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당시 협정을 부정하는 일로 봤다는 것이다. 검찰은 재판거래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면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구치소 방문조사 등을 검토 중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의 청와대 독대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만들어진 ‘정부협력 사례’ 문건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지시로 작성된 것으로 확인했다. 당시 행정처 심의관들은 검찰 조사에서 “박 전 처장이 메모 형태로 적어준 내용을 바탕으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을 작성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대 직전 작성된 문건에 법원행정처장이 개입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검찰 칼끝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턱밑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의 독대를 앞둔 시점인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일련의 사법농단이 상고법원 도입, 해외파견 판사 확대 등 여러 민원을 안고 있던 양승태 사법부와 소송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박 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로 보고 두 사람의 직접 개입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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