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최근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고용노동부 등을 대상으로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은 기각 사유로 “공무소 압수수색은 임의제출을 선행해야 한다”며 검찰이 먼저 임의제출 요구를 하지 않고 영장을 청구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임의제출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형사소송법상 임의제출 요구는 사실조회를 하라는 뜻이지 압수수색의 선행 조건이 아니다”며 반발했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된 압수수색 영장 기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건설업자로부터 향응을 받은 판사가 재판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무마하려고 법원행정처가 그 업자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은 “행정처 문건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강제징용 관련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법원행정처 압수수색영장 역시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발부하지 않았다. 6월 수사 이후 사법농단 관련 압수수색영장 208건 중 발부는 23건에 불과했다. 기각률이 무려 89%에 이른다.

누구든 법률에 의하지 않고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ㆍ심문 받지 않는다는 영장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것은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영장을 심사해왔을 서울중앙지법은 2016년 청구된 1만7,410건의 압수수색영장 중 145건(0.008%)을 기각했다. 전국 법원의 지난 5년간 압수수색영장 기각률 역시 1% 수준에 그친다.

사법농단 관련 압수수색영장 심사 과정에서 법원이 짧게 공개한 기각 사유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판단이나 힘이 작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결과만 놓고 볼 때 검찰이 느닷없이 수사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면 90%에 가까운 기각률은 납득하기 어렵고 비정상적이다.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쏟아지는게 당연하다. 이례적인 압수수색영장 기각을 두고 국회가 “수사방해”라며 “국정조사” 실시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을 법원은 허투루 흘려 들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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