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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예산에 눈물 못 닦아줘… 힘 빠지는 ‘피해자 전담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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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예산에 눈물 못 닦아줘… 힘 빠지는 ‘피해자 전담경찰’

입력
2018.09.03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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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경제적 지원 심의위원회

1~2개월만에 한번 열어 집행

장례비 5개월 지나 지원하기도

“생계비 등 경찰이 신속 집행해야”

“국가 예산에 신중한 접근도 중요”

한국일보 자료 사진
한국일보 자료 사진

6월 ‘군산 유흥주점 방화’ 사건으로 형부(47)를 잃고 부상 당한 언니(47)를 간병해야 했던 엄모(46ㆍ회사원)씨는 눈 앞이 캄캄했다. 50대 남성이 외상 술값 시비 끝에 지른 불로 언니 가정이 풍비박산된 것도 기가 막힌 데, 수천 만원에 이르는 언니 치료비는 고사하고 형부 장례를 치를 엄두도 나지 않아서다. 당시 34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그런 엄씨 손을 잡아준 건 전북 군산경찰서 피해자전담경찰관 서모 순경이었다. 서 순경은 엄씨와 범죄피해자지원센터(법무부 산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허벅지피부 이식수술로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언니 치료비와 형부 장례 및 화장비용까지 알아서 처리해 줬다. 덕분에 엄씨는 간병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엄씨는 “서 순경님이 수시로 전화해 언니 상태가 어떤지 묻고, 통원치료비와 교통비 영수증도 다 챙기라고 당부한다”라며 “최근에는 방화범 1심 재판이 13일에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더라”고 말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제도는 2015년 도입됐다. 일선 경찰서마다 배치된 전담경찰관(현재 295명)이 범죄 발생 이후 경황이 없는 피해자에게 경제ㆍ심리적 지원, 신변 보호, 필요한 정보 등을 유관기관과 협의해 안내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간 범죄피해자보호기금(2011년 관련법 제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범죄 피해자들이 전담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엄씨처럼 신속하게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작 전담경찰관들은 ‘긴급 지원’이라는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관련 예산이 피해자와 직접 접촉하는 경찰이 아닌 검찰에서 집행돼, 뜻하지 않게 ‘늑장 지원’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긴급생계비나 치료비, 장례비, 주거이전비용 등 긴급 지원이 필요한 사업 예산은 검찰 단계에서 지급되고 있고, 지원 여부를 심사하는 검찰의 ‘경제적지원심의위원회’는 통상 1~2개월에 한 번씩 열린다. 경찰 관계자는 “엄씨 사례는 당시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위원회가 긴급 소집된 예외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2018년 범죄피해자보호기금 기관별 송정근 기자/2018-09-0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2018년 범죄피해자보호기금 기관별 송정근 기자/2018-09-02(한국일보)

실제로 올 초 유명 관광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경우, 검찰 심의가 늦어지면서 장례비 300만원이 5개월이 지나서야 유족에게 지급됐다. 2016년 12월 이별 요구에 격분한 남성이 흉기를 휘두른 살해미수 사건이 발생, 피해 여성이 긴급하게 주거이전비용을 요청했지만 3개월이 지난 지난해 3월에야 돈이 지급됐다.

올해 피해자보호기금 880억원 가운데 경찰이 직접 집행할 수 있는 규모는 ▦피해자 임시숙소 지원 ▦스마트워치(위치추적장치) 제공 ▦강력범죄 현장 정리 등 12억원(1.4%)에 그친다. 경찰 관계자는 “대검이 집행하던 스마트워치 예산이 경찰과 더 밀접하다는 이유로 2016년 경찰로 이관된 전례가 있는 만큼, 긴급생계비 등 경찰 단계에서 집행했을 때 효과적인 부분은 경찰로 이관하고 심사도 맡기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검은 “긴급지원이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심의를 하고 있고, 기금도 국가 예산인 만큼 긴급성, 신속성 못지 않게 신중한 접근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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