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바른미래당 신임 대표가 지난달 8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학규 후보가 2일 바른미래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 대표에 선출되면서 여의도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 올해로 정계 입문 26년째를 맞은 그는 ‘바른미래당 성공’이라는 정치인생의 사실상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손 신임 대표는 1947년 경기 시흥군(현 서울시 금천구)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손 대표는 경기중ㆍ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고3 수험생 시절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대학생이 된 후 삼성그룹 사카린 밀수사건 규탄시위에 참여했다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 기간에 강원도 함백탄광에서 광부생활을 했으며, 복학 이후에는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대표와 함께 이른바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활약했다.

대학 졸업 후 진보 기독교 단체인 NCCK에서 박형규 목사를 만나 기독교 빈민선교운동에 투신했다. 부마항쟁 때 검거돼 고문을 당하던 중 유신체제 붕괴로 석방됐다. 1980년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석ㆍ박사를 마치고 귀국해 1988년부터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손 신임 대표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현 자유한국당) 입당해 경기 광명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했다.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그는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 돼, 소위 트리플크라운(국회의원ㆍ장관ㆍ도지사)을 달성한 이력을 발판으로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당시 이명박 박근혜 후보와 경쟁했다. 이들과의 경쟁이 여의치 않자 탈당한 뒤,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 창당에 합류에 대선 도전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패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도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재차 대권에 도전했지만, 당시에는 문재인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손 신임 대표는 이후 2014년 7ㆍ30 재보선에서 경기 수원병에 도전했다가 패배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에 있는 만덕산 모처 초막에서 칩거 생활을 했다. 2016년 총선 전 민주당의 지원 요청을 거절한 그는 이듬해 ‘국민주권개혁회의’라는 조직을 만들어 의장으로 취임한 뒤, 국민의당과 합당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으나, 경선에서 안철수 전 대표에게 밀리며 또 다시 대권 꿈을 접어야 했다. 3번의 대선 도전에 실패한 손 신임 대표에게 있어 이번 바른미래당 대표직은 정치 인생의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가 될 전망이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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