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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의 마음의 窓]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 망상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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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의 마음의 窓]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 망상은 다르다

입력
2018.09.0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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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SBS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400여 신자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피지로 가서 강제노역을 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귀신을 쫓고 영혼을 맑게 한다는 종교적 의식인 타작마당을 통해 딸이 엄마를, 남편이 자식을 뺨을 때리고 가위로 머리를 자르기도 해 가족관계를 붕괴시키기도 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구타에 의해 사망한 노인의 아들 인터뷰다. 자신의 아버지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고, 아버지는 거기까지인 것 같다는 증언을 들으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지에서 구출된 신자들 역시 하나같이 국내에 들어 오고 싶지 않고, 계속 그 곳에 남아 있겠다고 한다.

이 정도면 종교적 신념이라기 보다 종교적 망상에 가깝다. 체포된 목사는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행동을 종교적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반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사이비 종교집단은 종교로 위장하거나, 종교를 빌미로 사기나 범죄를 일으키는 집단이다. 겉으론 진실한 종교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론 특정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 활동을 한다. 과도한 헌금을 요구하거나, 과대 홍보를 한다든지, 강제적인 합숙훈련을 자주 하거나 사회적 혹은 법적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면 사이비 종교 집단을 의심해볼 수 있다.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이 종교적 믿음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족과 인연도 끊고, 사이비 종교의 목표를 이념 삼아 교주의 뜻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사이비 종교 교주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심리조작의 비밀’이라는 책을 쓴 일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카다 다카시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했다.

성격적으로는 의존성 성격장애가 많다.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상대방 판단에 의존하고, 항상 타인의 눈치를 보며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대신해 결정해줄 사람이 없으면 심한 불안감에 빠질 수 있다.

이외에도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상대방의 암시에 쉽게 동조하는 피암시성이 높은 사람, 높은 이상을 꿈꾸지만 열등감이 많은 사람,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쉽게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1978년 가이아나 정글에서 914명의 신자가 집단 자살한 ‘인민사원 사건’과 비슷한 양상이다. 인민사원은 1950년대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시작된 종교집단으로 목사의 기괴한 행동과 반사회적 행태로 인해 미국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교주인 짐 존스 목사는 1,000여명의 신자를 열대 낙원이라며 가이아나 정글을 데려가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후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주 존스의 명령에 따라 914명이 청산가리가 든 과일 주스를 마시고 집단 자살했다. 이 사건은 극단적인 사이비 종교의 행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집단자살에 대한 많은 연구를 낳았다. 국내에서도 1987년 종말론을 내세우며 집단 자살을 한 오대양사건이 이와 비슷하다. 사이비 종교에서 운영하는 회사에서 교주를 포함해 32명이 집단 자살했는데, 이 역시 극단적인 사이비 종교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종교는 유한한 인간이 필연적으로 느끼는 존재의 불안과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일 것이다. 불확실성이 큰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에게 종교는 많은 위안을 주고, 안정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이비 종교는 사회가 안정되고 미래 예측성이 높아질수록 존립 근거가 약해진다.

최근 신앙, 종교나 영적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는 신경신학(neurothe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발전하고 있다. 종교적 신념, 영적 체험 등과 뇌기능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다. 종교적 믿음도 뇌 기능일 것이니, 이 연구를 통해 과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뇌 기능을 바꿔 줌으로써 신앙적인 믿음을 변화시킬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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