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부작용 불구 정책 유지 선언
개방적 현실론보다 정치적 가치 택해
혁신성장과 상충ㆍ혼선 깊어질 위험도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이번 개각에서 말 많고 탈 많았던 경제팀은 거의 변화 없이 그대로 가게 됐다. 당사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산업정책 추진에서 별로 한 일이 없어 보이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나, 고용 창출엔 관심이 없던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정도가 바뀐 걸 경제팀 쇄신이라고 하기엔 역부족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병립하는 경제팀 유지는 분배정책에 치우친 기존 소득주도성장 정책기조를 일단 고수하겠다는 선언이다.

상반기 고용뿐만 아니라 분배지표까지 사상 최악 수준으로 악화한 것으로 나타난 후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까지 ‘혁신성장’ 행보를 부쩍 강화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역효과에 비판 여론이 들끓자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도까지 가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손을 잡았고, 원격의료 허용 방침을 표명했다. 은산분리법을 ‘붉은깃발법’에 비유하며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 추진을 약속하기도 했다.

공평하게 나눠 먹자는 정책 일변도에서 벗어나 나눠 먹을 떡을 키우는 정책에 더 힘을 쏟겠다는 신호로 읽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여기저기 문재인 정부의 동지들로부터 ‘상소’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진보 경제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나서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고, “더 밀리면 진다”는 정치적 간언 같은 것도 어떤 식으로든 청와대로 스며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만 해도 “소득분배 악화는 매우 아픈 지점”이라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던 문 대통령의 입장에 미묘한 반전이 일어났다. 개각 직전인 28일 “최저임금 인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경제정책 기조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대통령이 고민 끝에 강수를 택한 배경은 다음날 장하성 실장이 자청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드러났다. 핵심 논리는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면 다시 과거의 정책방향으로 회귀하자는 것이냐”였다.

하지만 장 실장의 설명과 논리를 되짚어 보면 무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 비판에 대한 인식부터 그렇다. 야당의 ‘소득주도성장 폐기’ 구호에도 불구, 실제로는 누구도 소득주도성장을 아예 폐기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 비판은 분배 개선책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정신’임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다만 비판은 최저임금 급등이나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 등이 저소득층 가계소득 감소나 자영업 경영난 등을 불렀고, 민간 부문의 비즈니스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적절히 속도를 조절하고 보완책을 찾으라는 데 맞춰져 있다. 그걸 장 실장은 “양극화의 고통을 가져온 과거 정책방향으로 회귀하자는 얘기”로 싸잡았다.

비판들이 소득주도성장ㆍ혁신성장ㆍ공정경제 등 경제정책의 3대 축을 다 부정한다며 반박한 것도 무리다.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오히려 혁신성장을 촉구하는 한편, 공정경제 시책을 지지한다. 본질은 3대 정책 축의 우선순위 조정과 성장 중심축을 혁신성장으로 돌리라는 얘기다. “과거 정부에서 투자 중심 성장정책을 10여년 이상 펼쳐 왔지만 성장잠재력을 높이지 못했다”며 전통적 성장정책 자체를 사시로 본 것도 옳지 않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혁신성장에 성과를 내도록 더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장 실장에게 가장 미덥지 못한 부분은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데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을 ‘몸에 좋은 쓴 약’처럼 감당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대체 수십, 수백만 소상공인들이 오늘 내일 밥줄이 끊길지도 모르는 위기감과 고통을 쓴 약처럼 감당하면서 기다려야 할 대단한 정의가 무엇이며, 그게 과거 선진국 만든다며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다는 건가. 힘겹게 소득주도성장 시비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번 개각이 도그마에 갇힌 결정장애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실사구시 경제정책을 제대로 펴란 얘기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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