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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의 역주행 ‘과거사 판결’ 피해자들 “감격...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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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의 역주행 ‘과거사 판결’ 피해자들 “감격... 이제 시작”

입력
2018.08.31 10:36
수정
2018.08.3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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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30일 민법이 정한 소멸시효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사건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헌법소원을 낸 피해자들이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고 나온 뒤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사랑 진실의힘 간사,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가족 박미옥씨와 남편 이호창씨, ‘모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이준호씨, ‘미법도 간첩 사건’의 피해자 정영씨, 송소연 진실의힘 상임이사. 진실의힘 제공
헌법재판소는 30일 민법이 정한 소멸시효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사건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헌법소원을 낸 피해자들이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고 나온 뒤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사랑 진실의힘 간사,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가족 박미옥씨와 남편 이호창씨, ‘모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이준호씨, ‘미법도 간첩 사건’의 피해자 정영씨, 송소연 진실의힘 상임이사. 진실의힘 제공

‘양승태 사법농단’의 일단으로 지목돼온 과거사 퇴행 판결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바로잡히게 되자, 가장 감격한 건 피해자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의 손해배상 소멸 시효를 돌연 단축해 최소한의 보상인 국가 배상을 받을 길조차 좁혀놨다. 피해자들은 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 피해를 당하며 억울한 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진실의힘 재단은 헌재의 결정에 만감이 교차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31일 공개했다. 앞서 30일 헌재는 중대한 인권 침해ㆍ조작 사건들에 소멸 시효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또 민주화 운동으로 보상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피해와 관련해 추가로 소송을 할 수 있다면서 관련 법에 일부 위헌 결정도 했다. 과거사 피해자들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 속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은 헌재의 결정에 눈물 짓거나 환하게 웃고 있다. ‘진도 가족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 박경준씨의 딸 박미옥씨, ‘이준호ㆍ배병희 모자 간첩 조작 사건’의 이준호씨, ‘미법도 간첩(납북 어부 귀환) 조작 사건’의 정영씨 등이다. 연신 눈물을 훔치던 박미옥씨는 이미 세상을 뜬 어머니 한등자씨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재심으로 아버지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 산소에 가 ‘미옥이 아버지, 당신 무죄라요’라면서 울었다고 하셨어요. 이제 나는 어머니 산소에 가서 ‘엄마, 그 판결이 잘못 됐대’라고 말할 거예요.”

이들을 비롯한 과거사 피해자들은 간첩 누명과 고문, 옥살이로 심적ㆍ육체적 고통을 받았다. 재심 청구로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를 했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소멸 시효 단축 결정으로 국가배상금을 받지 못하거나, 1심 판결 뒤 받은 배상금에 이자까지 붙여서 돌려줘야 하는 2차 폭력까지 당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들은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이다.

진실의힘 재단은 헌재의 결정을 반기면서도 “피해자들의 오랜 기다림과 삶에 답하는 최소한의 시작”이라고 논평했다. 진실의힘은 국가폭력 고문 피해자들이 받은 국가 배상금의 일부를 출연해 만든 피해자 지원 재단이다. 진실의힘은 “헌재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하지만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4년 반이나 흐른 다음에야 나온 이 결정을 앞에 놓고 기쁘다기 보다는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3년 대법원은 느닷없이 자신의 판례를 뒤집고 조작간첩 피해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권리 행사 기간을 6개월로 축소했다”며 “이 판결은 단지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넘어 민법을 지탱하는 기본원리의 소멸시효 이론까지도 비틀어버린 법 왜곡이자 헌법유린이었다”고 비판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이 같은 결정으로, 박동운 등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1981년), 송광섭 등 ‘송씨일가 사건’(1982년), 오주석 등 ‘일본 친ㆍ인척 간첩 사건’(1983년), 이준호 등 ‘모자간첩 사건’(1985년), 정영 등 ‘미법도 간첩 사건’(1983년) 등의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청구를 거부 당했다. 또 이미 가집행한 손해배상금을 고율의 법정 이자와 함께 반환해야 했다.

진실의힘은 “군사정권의 시녀가 되어 궤변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데 함께 한 과거의 법원이 저지른 법 왜곡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사태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진실의힘은 “대법원의 어처구니 없는 법 왜곡을 바로잡는 데 과연 그토록 긴 세월이 필요했느냐”며 “권력에 영향 받지 않고 오로지 헌법에 따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헌재에 주문했다. 또 법원과 정부를 향해서도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판결을 선고한 전ㆍ현직 대법관과 법관들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하고, 법무부는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를 회복시키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실의힘은 “피해자들은 고문과 조작의 잔혹한 고통을 견뎌내고 오직 진실을 무기로 전진해왔다”며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마땅히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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