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식 화장실. 유럽과 북미, 일본 등에서 일반적인 타입으로, 화장실이 침실처럼 물기 없이 깔끔하다.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트렌드가 된 모양이다. 올해 서울에서 열린 리빙디자인페어에 출품된 화장실 디자인이 모두 건식이었다. 그런데 건식이라고 제시된 화장실에 배수구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습식 화장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디자이너는 그것을 ‘반건식’이라고 설명했다.

건식 화장실이 유행하는 가운데 반건식이라는 국적 불명의 디자인이 등장한 까닭을, 2014년 4월 13일자 ‘머니투데이’의 한 기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건식은) 샤워기로 물줄기를 뿜어대며 솔질로 욕실 바닥타일 사이에 끼인 때를 시원하게 벗겨내야 성에 차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에겐 당연히 쥐약이다.” 왜 유독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물줄기를 뿜어대야 성에 차는가. 쉽게 닦이지 않는 오염물질이 바닥에서 냄새를 뿜어대기 때문이다.

2013년 브리검영 대학교 연구진은 서서 배뇨하면 무조건 변기 바깥으로 소변이 몹시 튄다는 당연한 사실을 줄기찬 반복실험 끝에 공표했다. 소변줄기는 애초에 한 물줄기가 아니라 분사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물청소가 필요할 정도의 화장실 오염은 서서 보는 소변이 주 원인이다. 성인 남자 한 사람이 서서 소변을 보면 하루 평균 2,300방울의 소변이 변기 주변 직경 40cm에 넓게 퍼진다는 일본 라이온화학의 실험결과도 있다.

반면 앉아서 소변을 보면 변기 바깥으로 튀지 않아 위생적이다. 또한 화장실 관리에 드는 노동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경제적이다. 락스를 풀어 문질러 닦을 필요도 없다. 결국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좋은 선택이다. 이 차이는 너무나 명확하여, 영국 최대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진정한 신사라면 앉아서 소변을 보아야’라는 2015년 3월 3일자 기사에서 ‘본디 앉아서 싸게끔 설계된 변기에다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지금 세계는 앉아서 소변 보기를 에티켓으로 권장하는 추세다. 예전부터 앉아서 소변 보기가 보편적이었던 독일과 북유럽 등은 물론, 북미를 거쳐 동아시아까지 그렇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은 초등학교 때부터 남자아이들에게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가르친다. 또 일본은 민간에서, 대만은 정부가 주도하여 앉아서 소변을 보자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하여 소위 ‘잘 사는 나라’들은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보는 문화가 이미 많이 정착되었다. 그들 나라에서 포근한 건식 화장실에 카펫을 깔고 생활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우리의 화장실 문화에선 여전히 남자는 서서 소변을 본다는 관념이 있다. 남자들이 서서 소변 보기를 고집하는 까닭은 오직 “남자니까”다.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화장실’ 대신 ‘변소’가 있던 시절을 살아온 어른들은, 소변을 앉아서 보라는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반백 년을 정직하게 살아왔는데 이젠 오줌 누는 자세까지 간섭 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스스로 청소하지 않으므로 자신이 만든 화장실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청결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도 옛 습관을 고수하는 것이 진정 남자다운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앉아서 소변 보기는 시민됨의 척도이기도 하다. 누군가 서서 소변을 본다면 다른 시민들이, 특히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여성 독자들은 남녀 공용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또는 아예 변기 위에 쭈그려 앉아 일을 마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여자사람친구 한 명은 록 페스티벌에 설치된 간이화장실에서 그렇게 소변을 보다가 겪은 눈물겨운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남성들의 시민의식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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