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받으면 ‘재판상 화해’성립
국가에 추가 손해배상 청구 못해
헌재는 “정신적 피해 보상 없이
국가배상청구 금지하는 건 가혹”

30일 헌법재판소가 심판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 보상법)’ 제18조 2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박정희 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이 신청한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대개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70~80년대 언론탄압에 맞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해고됐거나, 긴급조치 제 1, 4, 9호를 위반했다는 등의 이유로 부당한 징역살이를 했다. 이들은 2000년대 들어 민주화 보상법에 따라 구성된 위원회에서 보상금을 지급받았지만, 이와 별도로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불법체포와 구금ㆍ고문 등의 가혹행위, 블랙리스트 작성ㆍ배포에 의한 취업방해, 출소 이후에도 계속된 감시 등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가 발생했으며, 국가가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원은,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보상금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돼 국가에 추가적인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한 민주화 보상법 제18조 2항을 들어 이를 기각했다.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이 조항이 불합리하다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헌재는 이에 대해 일부위헌 판결을 내렸다.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과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은 재산적 손해 내지 손실에 대한 배ㆍ보상 및 사회보장적 목적으로 지급되는 돈일뿐,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ㆍ보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산상 손해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과거사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일부위헌으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과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족 등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6개월이 지난 뒤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민법상 소멸시효(6개월)에 걸려 패소하자 해당 조항(민법 제166조와 766조, 국가재정법 96조)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한 것이다. 이 조항은 소멸시효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시작된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이 시기를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로 보고, 이후 6개월 안에 손해배상을 제기하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에게 패소를 선고했다.

반면, 헌재는 과거사 정리법에 규정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ㆍ조작의혹사건’ 등은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국민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그 특수성 때문에 통상의 경우와 달리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국가가 공무원들의 조직적 관여를 통해 민간인을 집단 희생시키고 사후에도 조작과 은폐를 통해 진상규명을 저해했음에도, 그 불법행위 시점을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삼는 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란 손해배상제도 지도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헌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긴급조치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 등 54건에 대해선 각하 결정했다. 헌법재판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심사를 하더라도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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