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남자 300m 3자세 결선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영전(왼쪽). 팔렘방=연합뉴스

2008년 어느 날 예비군 훈련장인 경기 미금교장의 교관들이 긴장했다. 군복을 입은 무리 중엔 같은 해 베이징올림픽 사격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예비군 4년차 진종오가 포함돼 있었다. 세계 최고의 사격 실력을 자랑하는 진종오도 긴장하긴 마찬가지. 그는 당시 예비군 훈련용으로 많이 쓰이던 구형 M-16 소총으로 6발 모두 표적 정중앙에 명중시키는 위엄을 자랑했고, 훈련장에는 “역시 진종오”라는 찬사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진종오는 이후 올림픽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하며 ‘사격황제’로 우뚝 섰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중엔 현역 육군상사도 있다. 사격 남자 300m 소총 3자세에서 우승한 최영전은 “300m 경기 총은 군에서 쓰는 K-1이나 K-2와 비슷하고 탄두도 마찬가지"라며 "아무래도 군인 신분에 적합한 종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인에게 총은 꽤 익숙하다. 임진왜란 초기 조총으로 무장한 왜국과 해상 전투에서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건 이순신의 거북선에 장착된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 고려 말부터 개량 해 온 총포들이었다. 휴대용 권총의 초기 형태인 세총통도 조선이 자랑한 신무기였다. 조선의 전통 무예는 칼춤도 빼 놓을 수 없다. 또 중국 당나라의 역사책 당서(唐書)에는 “수성(守城)에 능한 자 고려 같은 나라가 없으며 공성(功成)에 능한 자 또한 고려 같은 나라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인은 성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원거리 전투에 능했다. 한국인의 주력 무예는 다름 아닌 활쏘기였다. 우리 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일컬은 것도 이(夷)자에 큰(大) 활(弓)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동쪽의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활ㆍ총ㆍ칼은 메달레이스의 삼두마차 구실을 하고 있다. 한국은 29일 현재 금메달 37개 가운데 펜싱(6개)과 양궁(4개), 사격(3개)에서 13개를 쓸어 담았다. 한국 양궁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 최강이다. 올림픽에선 무려 8연패를 기록 중이다. 32년간 통치하는 비결에 대해 한 외신은 “한국인은 사용이 불편한 쇠 젓가락을 사용한다”며 우리의 손끝 감각을 양궁 실력의 원천으로 보는 재미있는 분석을 내 놓기도 했다. 타고난 체격ㆍ체력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기초 종목이 아닌 기록 종목에서 참 미스터리한 일이다. “도대체 한국 양궁은 왜 강한가요?”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든든한 후원군의 존재가 회자된다. 정몽구(현대차그룹회장)-정의선(현대차부회장ㆍ대한양궁협회장) 부자(父子)의 양궁 사랑은 유명하다. 현대차그룹이 1985년부터 양궁 장비 개발 등에 투자한 금액은 300억원이 넘는다. 사격은 한화가, 펜싱은 2009년부터 SK가 회장사가 된 뒤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여 년간 양궁 국가대표 감독과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를 지낸 서거원 인천계양구청 감독은 그보다 더 냉철한 분석을 내 놓았다. 그는 “초등학교 양궁 선수들이 전국에 900명 가량 된다. 이들이 활을 잡는 순간 대한양궁협회에서 1년간 모든 장비와 대회 출전 비용을 지원해준다”면서 “사교육이 없다는 얘기는 파벌이 존재할 수 없고, 선수 선발에 잡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이기에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이고, 이는 한국 양궁의 지속적인 발전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시안게임에 못 나가고, 무명 선수라도 발탁되는 경우가 양궁에선 흔하다. 펜싱, 사격도 마찬가지다. 혜성처럼 등장했던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잊혀졌던 노장이 다시 태극마크를 달기도 하는 경쟁의 연속이다. 금메달 6개를 비롯해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를 휩쓸어 종목 우승을 차지한 펜싱의 ‘정정당당함’은 구본길과 오상욱의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전 맞대결 장면으로 압축된다. 이미 병역혜택을 받은 구본길보다 군 미필인 오상욱에게 금메달이 간절했지만 결과는 구본길의 우승이었다. 오상욱도 이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혜택을 받게 됐지만 스포츠는 스포츠일뿐, 후배를 배려한 꼼수는 없었다. 한국산 활ㆍ총ㆍ칼의 롱런 비결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파벌 싸움의 난맥상을 수면 위로 드러냈던 빙상과는 너무 대조적인, 사실 너무 당연한 스포츠맨십의 기본이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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