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포항공장 ‘온철봉사단’
영세 업체 10곳에 무료 설치
김희욱 작가 디자인 작업 참여

/그림 1[저작권 한국일보]경북 포항 옛 도심 상가에 예술간판 제작 봉사에 나선 현대제철 포항공장 직원들(조끼 착용)이 지역 상인들과 현판식 후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30일 오후 1시 경북 포항 중앙파출소 인근 한 주점에는 푸른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조형물과 같은 간판을 다느라 애를 먹었다. 술집을 가리키듯 누워 술을 마시는 모양의 입체 간판이 자리를 찾고 불이 들어오자 이를 지켜보던 가게 주인 강숙이(57)씨는 “아이고, 진짜 고마워요. 너무 멋집니데이….”라고 말하며 연신 박수를 쳤다.

이날 강씨의 가게 간판을 만든 사람은 현대제철 포항공장 직원들이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도 긴 팔의 작업복을 입고 자신들이 만든 간판을 다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점심까지 미루고 작업에 여념이 없던 직원들은 현판식이 끝나고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대제철 포항공장 총무팀 윤인영씨는 “만들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완성된 간판을 보니 예술품 못지 않게 잘 만든 것 같아 뿌듯하다”며 “가게 사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셔서 더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현대제철 포항공장 직원들이 포항 북구 여천동 한 주점에 자신들이 만든 입체 간판을 달고 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현대제철 포항공장 직원들이 간판 봉사에 나선 건 이달 초다. 이들은 4년 전 포항공장 사무관리직 277명으로 결성된 ‘온철봉사단’ 소속 직원들이다. 온철은 ‘철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만든 이름이다.

온철봉사단은 올 초 포항시 산하 포항문화재단을 통해 도심 공동화로 쇠퇴하는 포항 구도심에 예술성을 가미한 입체 간판 제작을 제안 받았다. 흔쾌히 수락한 봉사단은 대상을 물색하고 포항 북구 여천동 중앙파출소를 중심으로 일대 영세 업체 10곳을 골랐다. 포항 중앙파출소 일대는 한때 포항 중심상권으로 번화했지만 지난 2006년 인근 포항시청사가 떠난 후 도심 공동화로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온철봉사단은 급속도로 황폐해져 가는 옛 도심에 재능 기부를 통해 활력을 불어넣기로 하고 60명이 팔을 걷었다.

철과 나무로 간판을 만든다고 해서 프로젝트 이름은 ‘철수와 목수’로 붙여졌다. 철강회사에 십 수년 일한 직원이지만 간판 제작에는 문외한이라 디자인 등 전 과정에 전문작가 김희욱씨의 도움을 받았다. 작업도 김 작가의 사무실인 ‘피터의 공작소’에서 이뤄졌다. 공짜 간판이지만 고객인 상인들의 요구사항도 빼놓지 않았다. 정식 상견례를 갖고 원하는 모양 등을 주문 받았다. 제작 전 커피 드립 기구를 만들며 실습 시간도 가졌다.

현대제철 포항공장 직원들이 폭염에도 무료 간판 제작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포항문화재단 제공

하지만 ‘철수와 목수’ 프로젝트는 순탄치만 않았다. 철근과 나무를 절단하는 첫 시간부터 사상 유례없는 폭염을 만난 것이다.

현대제철 인력운영팀 강영명 대리는 “쇠파이프를 자르고 용접해 붙여야 하는데 숨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너무 더워 지하실에서 만들기도 했다”며 “날씨에 따라 지하실과 지상을 오가며 하나씩 완성해 갔다”고 말했다.

최악의 폭염도 이들의 열정을 꺾을 순 없었다. 60명의 봉사단원들이 근무 외 시간을 쪼개 모여 한 달 내 구슬땀을 흘린 덕에 10개의 예술간판이 계획대로 완성돼 갔다. 봉사단은 이날 첫 현판식을 시작으로 9월초까지 남은 9개를 차례로 걸 예정이다.

온철봉사단 단장인 허정윤 현대제철 과장은 “이번에 간판을 만든 가게 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현수막만 걸어놓고 장사를 한 집도 있었다”며 “지난 한 달 무척 더웠지만 침체된 거리에 예술을 입히고 각자의 재능을 이웃과 나눌 수 있어 어느 해 여름보다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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