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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기자의 교과서 밖 과학]공기의 역습

입력
2018.09.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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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류의 90%가 암ㆍ심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수준의 대기 오염에 노출돼 있다. 그로 인해 매년 700만명이 사망한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108개국, 4,300여개 도시를 조사한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공기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발적인 화석연료 사용과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급속한 경제발전의 이면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된 ‘2018 환경성과지수(EPI)’ 대기질 순위에서 한국은 180개국 중 119위에 올랐다. 2년 전 결과(173위)에서 54단계나 뛰어올랐지만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앞서 2015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위성 관측으로 분석한 전 세계 195개국 도시의 이산화질소 오염도 조사에선 서울이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공기 질이 나쁜 도시로 꼽혔다. 이산화질소의 대기농도가 가장 높은 도시는 중국 베이징이었고, 중국 광저우ㆍ일본 도쿄ㆍ미국 로스앤젤레스가 뒤를 이었다. 이산화질소는 심할 경우 호흡곤란, 마비 등을 일으킬 수 있는 광화학 스모그의 원인 물질이다.

인간이 불러온 대기오염이 악영향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피해 범위도 전방위적이다. 몸에 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인지능력을 떨어트리고 범죄 발생률까지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을 정도다.

미국 예일대와 중국 베이징대 연구진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대기오염이 심할수록 언어와 수리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0~2014년에 10세 이상 중국인 남녀 3만1,955명을 대상으로 숫자 계산과 단어 맞추기 등 인지능력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대기오염에 노출될수록 언어ㆍ수리 점수가 모두 떨어졌다. 점수 하락 폭은 수리보다 언어가 컸고, 여성보다 남자에게서, 중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들보단 초등학교까지 나온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대기오염 물질이 두뇌의 언어와 관련한 백질(White matter)에 더 악영향을 미치는 데다, 남성이 평소 여성보다 백질을 적게 쓰기 때문에 남성에게서 언어 능력 저하가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뇌는 크게 정보처리ㆍ인지기능 역할을 하는 회백질(Grey matter)과 백질로 이뤄졌다.

대기오염은 기대수명도 줄인다. 심혈관 질환과 당뇨병 등 여러 질병의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은 지난달 22일 미국 화학회(ACS)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환경 과학과 기술 레터스’에 “대기오염이 사람의 기대수명을 1.03년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185개국에서 초미세먼지(PM2.5) 노출에 따른 기대수명을 비교ㆍ분석한 결과다. 기대수명은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연수다. 초미세먼지는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ㆍ1㎛는 100만분의 1m)보다 작은 미세먼지다. WHO는 초미세먼지를 발암물질로 보고 있다.

기대수명이 가장 많이 줄어드는 국가는 방글라데시(1.87년)였다. 이곳의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1㎥당 98.6㎍(마이크로그램ㆍ1㎍은 100만분의 1g)이다. 전 세계 평균(1㎥당 47.9㎍)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기대수명 감소 폭이 제일 적은 곳은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1㎥당 5.1㎍인 스웨덴(0.13년)이었다. 한국은 초미세먼지로 기대수명이 0.49년, 북한은 1.23년 단축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대기오염은 대표적인 사망요인”이라며 “공기 질이 좋아지면 현재 60세인 이들이 85세 이상까지 생존할 확률이 15~20% 높아진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틱리포트’에는 대기오염이 쥐의 두뇌에 유전적 변형을 일으켜 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시더스-사이나이 종합병원 연구진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장기 손상을 막기 위해 인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6년에만 대기오염으로 전 세계 320만명(같은 해 신규 당뇨병 환자의 14%)이 새롭게 당뇨병을 앓게 됐다거나, 미세먼지로 매년 400만명이 심혈관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9년간 미국 9,360개 도시의 대기오염 상태와 범죄율을 비교ㆍ분석했더니 대기오염이 심할수록 살인ㆍ강도 등 범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수요전망 보고서’를 통해 2040년 소비되는 1차 에너지의 22.3%를 석탄, 27.5%를 석유가 책임질 것으로 내다봤다. 2016년 소비비중(석탄 27.3%ㆍ석유 31.9%)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에너지 소비의 절반을 담당하게 될 거란 얘기다. ‘공기의 역습’ 피해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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