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질문을 놓친 기자, 언론

입력
2018.08.29 19:19
30면
0 0

 기자는 세상 향해 무엇이든 묻는 사람 

 자신과 조직에도 끈질기게 질문해야 

 “좋은 질문이 미래도 만들어간다” 

편집국에서 한발 떨어져 ‘미디어전략’이란 걸 고민한지 1년 8개월. 똑 부러진 정답 없는 문제들과 씨름하는 게 일이다 보니 곧잘 깊은 회의에 빠지곤 한다. 탈출구를 쉬 찾을 수 없는 포털 중심의 뉴스 생태계, 엎친 데 덮치듯 몰려드는 더 강력한 외산 플랫폼들의 쓰나미, 여전히 기존 문법과 토대에 집착한 채 부유하는 기성 언론 조직… 이 난제들 사이를 돌고 도는 흐린 발자국이 쌓여갈수록 더 또렷해지는 질문이 있다. 기자 혹은 언론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어쩌면 언론이 처한 이 총체적 위기의 밑동에는 우리가 별 고민 없이 뻔한 답만 읊거나 어느 순간 놓쳐버린 이 질문들이 묻혀 있는 게 아닐까. 하도 써먹어 쉰내가 날 듯한,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s)!”는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기자란 업(業)의 본질을 꿰는 가장 명징한 정의는 “(세상을 향해 무엇이든)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불어 기자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스스로에게도 무엇이든 묻고 따지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CNN 앵커 출신의 프랭크 세스노는 ‘판을 바꾸는 질문들’에서 “질문은 우리가 타인과 이어지는 길”이라고 썼다. “좋은 질문을 하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흥미와 호기심이 표출된다. 속도를 늦추고 주의 깊게 듣고 더 묻자. 그러면 더 깊이 교류하게 된다. 관심과 애정이 표현된다. 신뢰가 형성된다. 공감하게 되고 차이를 잇는 가교가 생긴다. 더 좋은 친구, 동료, 혁신자, 시민, 리더, 가족이 된다. 미래가 만들어진다.” 좋은 질문을 이어왔다면, 언론이 세상(독자)의 변화에 그토록 아둔하거나 오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MBC가 전 정권 시절 파업 참여 기자들을 내친 자리에 기자 경험이 전무한 이들을 뽑거나 청와대와 여당 정치인의 추천을 받아 채용한 사실이 최근 한국일보 보도로 드러났다. 면접과정에서 “뽑아주면 노조 할 거냐”는 등 불온한 질문을 던지고 입맛에 맞는 답변을 하면 ‘사상적으로 명쾌하다’며 높은 점수로 합격시키기도 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이유는 간명하다. 공정성 따위 따지지 않고 ‘닥치고 복종!’ 할 기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좀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MBC 사례는 언론계 최악의 채용 비리라 할 만한 극단적인 경우지만, 뼈대만 추려보면 숱한 언론사의 편집국(보도국)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순응의 메커니즘과 얼마나 다를까. 예컨대 오로지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광고성 기사, 선정적 기사 쓰기에 기자들을 내모는 것, 정규직 기자들의 반발을 피하려 별도의 직군을 만들거나 군소리 내기 힘든 비정규직 기자를 뽑아 쓰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닥치고 복종!’까진 아니어도 조직 내에서 비판과 반론을 허물없이 제기하기 어렵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식의 체념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조직문화는 어떤가. 앞서의 논의를 덧대자면 바깥 세상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조직을 향해서도 ‘끈질기게 질문하는 사람’이어야 할 기자의 정체성이 흐릿해져 가는 현실은 괜찮은가.

이런 낡은 문화에서, ‘도전’과 ‘혁신’이 싹이라도 틔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의 과녁은 억압적인 조직만이 아니다. 윗분들이 모든 권한은 다 틀어쥔 채 젊은 기자들에게 “뭐든 시도해 봐, 해 보라니까!”라고 외치는 것이 대다수 언론사의 현실이다. 최근 MBC와 2030을 겨냥한 모바일 뉴스서비스 개발을 협업한 메디아티의 강정수 대표는 27일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한때 ‘뉴스데스크’가 ‘무한도전’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당시 뉴스는 엘리트의 시각에서 단일한 관점을 제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성기를 경험한 경영진의 사고방식이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 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스노의 말을 빌려 거듭 말한다. 좋은 질문이 판을 바꾸고, 잃어버린 독자와 다시 이어지는 길을 내고, 신뢰를 형성하고, 미래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끈질기게 묻자. 기자는, 언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