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정원
김영미 글∙박정완 그림
뜨인돌어린이 발행∙36쪽∙1만3,000원

옥탑방은 드라마 속의 낭만 공간으로, 수 년 전 서민 행보를 위장한 대통령 후보의 구설수 속 서민 주거시설로, 서울 시장의 민생 고충 체험지로 주목받아 왔다. 실체는 더도 덜도 없는 도시 주거의 막장, 이른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림책 ‘하늘정원’의 주인공 소현이 함박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엄마와 단둘이 이사하는 곳도 연립주택 옥탑방이다.

건강하고 다정한 엄마 아빠와의 풍족했던 일상 바깥으로 갑자기 내쫓긴 소현이는 낯설고 황량한 세상에서 홀로 사는 옆방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냉기 속에 틀어박힌 묵묵부답 엄마를 대신해 소현이의 봄 노래를 맞장구쳐 주고, 소현이 차려내는 소꿉 밥상도 맛나게 받아준다. 그리고 어느 날 옥탑에서 결코 누릴 수 없는 놀라운 것을 가져다 준다.

속표지 앞 헌사와 작가 소개 등을 참조하자면 글 작가 김영미는 친구의 어린 시절 실화를 모티브로, 동네에서 꽃 대궐로 불렸던 작가의 옛집과 철철이 꽃을 피워 보여줬던 부모님의 사랑을 소환한다. 그림 작가 박정완은 글의 이야기를 성실히 풀어내면서 꽃 가꾸기를 좋아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웃 할아버지 캐릭터에 담아 동판 한 장 한 장에 땀땀이 새겨 넣었다. 글 작가의 원고가 그림 작가 손에 닿은 순간부터 지난한 작업 과정을 거쳐 출판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는 이 협업 작품에는 무엇보다 느지막이 그림책 길을 걷는 60대와 50대 두 작가의 순도 높은 열정과 기품이, 손주를 돌보는 어른으로서의 웅숭깊은 지혜와 함께 담겨있다.

소현의 옥탑 세상 유일한 이웃이자 친구인 할아버지가 가져온 것은 예전에 곡식 담는 데 쓰던 함지박 하나와 작은 화분이다. 소현이는 함지박을 보자마자 나무 배로 인지하고, 그 안에 들어가 기우뚱기우뚱 노도 없이 물도 없이 마음껏 옥탑 바다를 떠다니며 즐긴다. 그에 싫증이 나서야 또 하나의 선물 라벤더 화분의 아름다움에 눈뜬다. 그로 해서 이 어린 존재는 “할아버지, 우리 옥상 가득 예쁜 꽃밭을 만들어요!”라든지 “우아, 하늘정원이다!”라고 외친다. 앞서 어른이 ‘꽃을 가꾸면 멋진 세상을 만들 수 있어’라든지 ‘뭐라고 이름 지을까?’라고 가르치거나 묻지 않았기에 나타난 결실이다. 할아버지는 오직 아이의 열의가 구현하고자 하는 세상, 아이가 감탄하는 국면을 위해 필요한 도구며 재료를 적절히 제공하고 잠자코 함께 기다린다. 감동적이고 모범적인 어른의 모습이다. 그렇게 어린 존재는 막장 주거지 옥탑을 하늘정원으로 바꾸며 꽃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피어나 부모의 불행을 훌쩍 뛰어넘는다. 드디어 엄마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꽃밭 한쪽에 일용할 양식을 심는다. 소현이가 가꾼 꽃의 건강한 열기가 아빠에게도 가닿을까.

‘하늘정원’은 고전급 미국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원제 ‘Gardener’)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대공황기 할머니와 함께 작물과 꽃을 가꾸며 다복하게 지내던 시골 소녀 리디아가 도시의 우울한 외삼촌에게 보내어졌다가 황폐한 옥탑 공간을 정원으로 가꾸면서 삶과 현실을 가꾸는 참된 정원사의 시간을 경험한다는 내용이 담긴 책이다. ‘하늘정원’은 건물 꼭대기 옥탑 공간과 옥탑방에서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점에서 더 독보적이다. 앞표지의 중심을 차지하는 나팔꽃과 장미꽃, 뒤표지의 함지박에 피어난 백일홍 채송화 봉숭아 데이지 제비꽃, 회복된 엄마와 함께 꽃춤 추는 장면 속 엄마 머리 위 백일홍 모자와 소현의 손에 들린 한련화 한 줄기, 차압 당했던 축음기의 스피커처럼 그려진 나팔꽃 등… 세상 어디에나 있을 막장 거주지에 일군 꽃밭, 거기에 피어난 꽃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를 톺아 보는 그림책 독서 특유의 기쁨도 넉넉하다.

이 동판화 그림책을 소장한다는 것은, 느닷없는 불행의 일격에 훼손될 뻔했던 어린 존재가 막장 주거 공간에서 오히려 지혜롭고 친절한 이웃 어른의 보살핌을 받으며 꽃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위로받는다는 문학적 서사를 시시때때 즐기게 된다는 뜻이며, 동판화의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응용한 그림 16장면 이상을 간직하게 된다는 뜻이며, 옥탑 공간 또한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의 순정한 삶터로 기억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상희 시인∙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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