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만화의 미래는 여성 독자에 달렸죠”

알림

“만화의 미래는 여성 독자에 달렸죠”

입력
2018.08.30 04:40
27면
0 0

 ‘원더우먼’ 스토리 작가 에이미 추 

 직접 출판사 ‘알파걸 코믹스’운영 

 “최근 美 만화계 엄청나게 변화 

 여성 편집자ㆍ관리직 많아졌고 

 여성을 주체적 인물로 묘사 

 남성은 만화보다 게임에 더 관심” 

에이미 추가 작품에서 주체적 여성상을 쓰는 건 젠더감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추는 “알파걸 코믹스 독자의 절반 이상이 남성”임을 강조하며 “화가에게 제 작품 여성 캐릭터를 ‘섹시하게 그려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다. 단, 성비 균형을 맞춰 남성 캐릭터도 똑같이 섹시하게 그려달라고 한다. 핵심은 작품의 재미”라고 말했다. CICI 제공/2018-08-29(한국일보)
에이미 추가 작품에서 주체적 여성상을 쓰는 건 젠더감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추는 “알파걸 코믹스 독자의 절반 이상이 남성”임을 강조하며 “화가에게 제 작품 여성 캐릭터를 ‘섹시하게 그려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다. 단, 성비 균형을 맞춰 남성 캐릭터도 똑같이 섹시하게 그려달라고 한다. 핵심은 작품의 재미”라고 말했다. CICI 제공/2018-08-29(한국일보)

데드풀, 앤트맨, 원더우먼, 포이즌 아이비 등 마블과 DC코믹스의 대표작 대본을 종횡무진 써내는 작가가 있다. 중국계 미국인 여성 에이미 추(Amy Chu)다. 컨설턴트로 일했던 그는 만화 작가를 꿈꾼 친구를 대신해 작품 줄거리를 구상하다 스스로 작가가 됐고, 여성 작가에 의한, 여성 독자를 위한 만화를 내는 출판사 ‘알파걸 코믹스’도 차렸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주최한 ‘2018 문화소통포럼’ 참석 차 한국을 첫 방문한 그는 “내년쯤 제 작품에 K팝 같은 한국의 문화를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화 작가가 된 데는 만화보다 잡지의 영향이 컸다. 웨슬리대학과 MIT에서 동아시아학, 건축학을 이중전공한 에이미 추는 대학 시절 아시아계 미국인을 위한 잡지 ‘A 매거진’을 발행했고, 이때 만화 작가를 꿈꾼 친구 조지아도 만났다. 29일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만난 그는 “당시만 해도 아시아계 미국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매체가 많지 않았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게 성장 잠재력도 커 보였다”고 말했다. ‘여성을 위한 만화출판사’를 차린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냐는 질문에 추는 ‘그렇다’고 답했다.

“젊은 여성을 위한 만화를 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느꼈으니까요. 당시 마블과 DC코믹스 관리자들이 ‘여성은 만화를 잘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여성은 자신들의 캐릭터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을 때 그 만화를 안 보는 거예요. 외모만 강조하거나 주변 인물로만 그릴 때죠. 2010년 무렵 주체적인 여성을 주연으로 둔 SF물 ‘사가’(이미지코믹스 발행)의 매출액을 보니 마블, DC코믹스 대표작 매출액을 앞섰더군요. 이건 새로운 독자로서 여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2011년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출판사 ‘알파걸 코믹스’가 문을 열면서 추는 작가보다 출판사 경영을 담당하는 사장이 먼저 됐다. 한데 “친구가 텔레비전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알파걸 코믹스에서 발간하는 작품의 줄거리를 스스로 쓰게 됐다. 이듬해 자신이 쓴 첫 책이 출간됐고, 2013년 DC코믹스, 2014년 마블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의 만화책 출간 방식은 한국과 다르다. 작품 마다 출판사에 소속된 편집자가 있고, 편집자가 스토리 작가와 화가, 기타 스태프 등을 섭외해 한 팀을 꾸리는데 프로젠테이션을 통해 함께 일할 사람들을 최종 낙점한다. 추는 “이런 업계 특성이 상대적으로 신인인 여성에게 충분한 기회가 오지 않게 만든다. 마감을 못 맞추면 편집자가 해고되기 때문에 신인보다 검증된 주류 작가, 화가를 쓴다. 제가 앤트맨, 원더우먼 시리즈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새 편집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원더우먼' '앤트맨'의 작가 에이미 추. CICI 제공
'원더우먼' '앤트맨'의 작가 에이미 추. CICI 제공

“마블, DC코믹스 작품을 쓸 때와 알파걸 코믹스 작품을 쓸 때 제 전략은 완전히 다르죠. 마블, DC 작품은 오래 연재된 만큼 각각의 세계관, 캐릭터, 독자층이 견고해요. 알파걸은 신진 매체니까 기존 독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죠. 하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남성 독자가 좋아하면서도, 새로운 여성 독자를 끌어들일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마블, DC코믹스의 두터운 팬층을 고려해 시리즈물 주인공 캐릭터는 크게 흔들지 못하지만, 조연 캐릭터는 새로 만들거나 상을 바꾸기도 한다. 더 많은 독자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작품에서 동일한 인종, 성비의 대표성을 표현하는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추는 “좋은 이야기를 쓰려면 입체감 있는 인물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동양인을 무술 도사로만 그리는 전형적인 묘사을 통해서는 이런 입체감 있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파걸 코믹스가 문을 연 2011년과 비교해서도 미국 만화계는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일단 편집자, 관리자에 여성이 많이 진출했고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죠. DC코믹스의 새 그래픽노블 제목이 ‘DC코믹스 히어로 걸스’입니다. 8~12세 여아를 대상으로 한 책인데 이게 배트맨 시리즈보다 더 많이 팔려요. 만화업계 미래는 여성 독자에게 달렸습니다. 남성 독자는 이제 만화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관심을 옮겼거든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