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정무위 소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제1차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책상머리’란 단어는 ‘책상의 한쪽 자리’를 뜻하지만 현실에선 정책을 설계하는 정부 공무원을 깎아 내릴 때 많이 쓰인다. 책상머리 공무원을 문제 삼는 대표 집단이 국회인데, 국정감사 땐 장관들을 향해 공무원들이 책상에만 붙어 있으니 국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는 것 아니냔 질책을 쏟아낸다. 일견 틀린 지적은 아닌데, 난 국회의원 역시 공무원보다 더하면 더했지 책상머리 비판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17년 동안 죽고 살기를 각 4번씩 반복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2001년 도입)을 보며 느낀 단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7일 워크아웃 근거법인 기촉법을 5년 한시법으로 부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난 6월말 법적 효력을 상실한 기촉법은 법안소위를 연 지 2시간도 안 돼 재입법이 결정됐다. 언론은 구조조정이 급한 기업들이 한숨 돌리게 됐다는 기사를 발 빠르게 띄웠지만, 난 이 광경이 웃펐다(웃기고 슬펐다). 이 쉬운 일을 왜 법이 실효되기 전에 하지 않고 법 공백에 따른 대혼란이 벌어진 뒤에야 하는지 납득이 되질 않아서다. 그런데 실효된 법을 다시 되살리는 작업을 17년째 반복하고 있는 이 비효율의 극치를 마주하면, 민생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국회의원의 충정이란 게 참 별것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예 법을 없앤 것도 아니고 2개월 걸려 재입법 하면 된 거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2개월 동안 현장에서 벌어진 대혼란을 감안하면 단순히 이를 국회의 직무유기 정도로 낮춰보기 어렵다. 기촉법 실효 전 정부는 정무위에 법 효력을 연장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국회는 무시했다. 기촉법이 실효되자 다급해진 건 정부였다. 금융위원회는 법 실효에 따른 시장 충격을 막으려고 법 실효 2주일 전부터 법을 대신할 ‘구조조정 임시협약’을 만드느라 모든 행정력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 임시협약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힌 금융사는 대상 채권단의 80%에 그쳤다. 그렇잖아도 법적 강제력이 없는 임시협약인데 10곳 중 2곳이 빠지면 협약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그러자 중소기업들은 난리가 났다. 대기업은 대마불사지만 중소기업은 워크아웃을 빼면 선택지는 사실상 법정관리 뿐이다. 수주기업엔 법정관리 자체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국회를 향해 기촉법의 재입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도 이런 절박감 때문이다.

문제는 국회가 법 공백 사태를 빚어 기업을 들었다 놨다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2년 8개월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5년 말 국회는 일몰을 앞둔 기촉법을 재연장하기로 합의하고도 갑자기 여야가 정쟁을 벌인 탓에 관련 법은 3월 중순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당국과 채권단은 법 공백을 막으려고 연초부터 한 달 가까이 작업해 임시협약을 만들어야 했다. 이 기간 피해 본 기업이 없다면 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국회의 직무유기로 발생한 막대한 행정 손실, 기업들이 느꼈어야 할 막연한 불안감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이다.(과거 법 실효 기간 도산한 기업 사례는 숱하다.)

정무위 의원들은 ‘관치’를 기촉법의 반대 명분으로 내세운다. 17년째 바뀌지 않는 진부한 레퍼토리인데, 과연 사회적 비용을 상쇄할 정도로 타당한가. 매번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한국GM, 금호타이어 사태를 관치 사례로 꼽지만, 정작 이들 기업은 모두 워크아웃이 아닌 ‘자율협약’을 거친 기업들이다. STX조선이 법정관리 문턱에 있을 때 가장 먼저 정부에 지원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건 PK(부산·경남) 출신 국회의원들이었다. STX조선에 투입된 혈세만 6조원이 넘는다. 2013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2년 5개월밖에 안된 경남기업에 지원하라고 당국에 압박을 넣은 건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었다. 이들이 관치의 대안으로 ‘시장 자율 구조조정’을 내세우는 건 아이러니다. 시장 구조조정의 최대 적은 과연 관치일까. 난 정치라고 본다.

김동욱 경제부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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