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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알츠하이머와 범죄

입력
2018.08.2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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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에서 한 70대 노인의 연쇄 살인사건이 화제가 됐다. 가케히 지사코(재판 당시 70세)라는 여성이 결혼상담소에서 소개받아 사귀던 남성이 차례로 숨진 사건이다. 범행은 2013년 말 그녀와 결혼한 남자가 한 달 만에 숨지자 교토 경찰이 수사에 나서 시신에서 청산화합물을 검출하면서 꼬리가 잡혔다. 결국 3명 살인, 1명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교토지법에서 재판이 진행됐는데 1심 판결을 앞두고 문제가 발생했다. 피고가 ‘경증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이다. 피고는 “내가 죽였다”고 자백하면서도 “죽일 당시 상황은 떠오르지 않는다”며 기억 상실을 호소했다. 변호사는 알츠하이머 때문에 “소송능력도 책임능력도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책임능력이나 소송능력에 문제가 없다며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 인지력 이상으로 인한 범죄 증가는 고령화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다. 대표적인 인지력 이상으로 알츠하이머, 루이소체, 뇌혈관성, 전두측두엽치매(FTD) 네 가지를 꼽는다. 발병 인구는 알츠하이머가 가장 많지만 절도 등 반사회적 행동은 FTD에서 빈발한다. 일본의 경우 재판이나 수감 중 인지력 감퇴가 확인되는 경우도 늘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 한편 ‘교토 연쇄살인사건’처럼 피고의 무죄 호소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제기된 명예훼손 소송 재판에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광주지법 재판부가 “알츠하이머를 2013년 전후부터 앓았다는데 회고록은 지난해 4월 출간됐다”며 “알츠하이머를 앓는 사람이 어떻게 회고록을 출간하느냐”고 하자 변호사는 발병 오래전부터 회고록을 준비했다고 답했다. 회고록 작성에 간여했던 전 청와대 비서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소송 대상이 된 표현을 자신이 썼다고도 했다.

▦ 이야기를 종합하면 회고록은 과거 전씨 구술을 토대로 주위에서 썼고, 전씨는 최종 원고를 검토할 시점에 이미 “단기기억 상실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다. 예민한 표현까지 남이 쓰고 완성된 원고를 살필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출간된 책을 그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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