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자녀 사생활 노출
흥미 끌기 위해 갈등에만 초점
캐릭터 만들려 억지 설정도
'악마의 편집' 조작 의혹 일어
"신중한 접근 필요" 목소리
그림 1 방송인 김성경(오른쪽)은 KBS2 예능프로그램 ‘엄마아빠는 외계인’에 아들과 함께 출연해 싱글맘의 일상을 보여준다. 방송화면 캡처

“남자한테 사랑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친한 친구나 연인끼리의 대화가 아니다. 이혼하고 홀로 자녀를 키우는 40대 엄마가 스무 살 아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소파에 마주앉은 아들의 표정은 난감하다. 시청자들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방송으로 ‘중계’되는 이혼 가정의 일상이 낯설기도 한데다, 파격적인 발언이 놀랍기만 하다. 지난달 31일 첫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엄마아빠는 외계인’의 한 장면이다.

싱글맘인 방송인 김성경이 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아들의 얼굴까지 공개했다. 시청자들은 당황스러운데, 방송은 다짜고짜 ‘캐릭터’ 설정 작업에 들어갔다. 직설적인 김성경을 두고 ‘NO필터맘’이라고 칭하고, 엄마를 위해 아침식사를 챙기는 아들은 ‘어른스럽다’며 치켜세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방송 첫 회 만에 김성경은 ‘NO필터’ 발언에 요리도 못하고 아들의 연애에 간섭하는 ‘철부지’ 엄마가 됐다. 아들은 심성 착하고 속 깊은 ‘효자’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결손’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이 붙던 가족이 예능프로그램의 신주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없는 것일까.

‘미혼부’ 김승현은 지난해 6월부터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에 가족들과 함께 출연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미혼부 등 다양한 가족상, 흥미로만 소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둔 미혼부, 이혼한 뒤 아들을 홀로 키운 싱글맘의 재혼은 아직 방송에서 다루기에는 조심스럽다. 시청자의 거부감은 아직 남아 있어서다. 다큐멘터리로 전해지는 미혼부와 싱글맘의 애환은 남다르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이 전하는 감정의 결은 다르다.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살림남2’)는 지난해 6월부터 미혼부인 배우 김승현을 등장시켰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김승현의 처지와 고등학생 딸 수빈이의 일상 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살림남2’의 썩 괜찮은 시청률(7%대)이 영향을 줬을까. SBS도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을 통해 싱글맘인 배우 장신영과 동료 배우 강경준의 재혼 일기를 써내려 갔다. 시청자들의 눈이 커질 정도로 파격적인 시도였다. “저렇게 방송에 나와도 되나” “(장신영) 아이들의 얼굴이 공개되는데 상관없나”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최근 부부가 됐지만, 프로그램 초반에는 비혼 상태에서 부부처럼 생활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장신영이 강경준의 집에서 김장을 하고, 예비 시부모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은 여느 부부나 다름없었다. KBS는 ‘미혼부 김승현’으로, SBS는 ‘최초의 비혼커플 출연’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홍보에 열을 올렸다. 자녀들의 삶을 감안하면 조심스럽게 묘사돼야 할 가족 이야기가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지나치게 가볍게 다뤄졌다. 이들 가족의 현실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를 끌어내기 보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화제 만들기에 집중했다.

“너는 아빠를 하나도 안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수빈의 상처가 종종 들춰졌고, 아들 김승현의 결혼을 원하는 부모는 “이혼남보다 미혼부가 더 치명적”이라는 결혼정보업체의 말에 눈물을 삼켰다. 방송에 처음 등장한 장신영의 아들이 강경준에게 “삼촌”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대목을 생경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한석현 YMCA 시청자미디어본부 팀장은 “예능이 미혼부나 이혼가정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시청률 상승을 위해 단순히 흥미 요소로만 풀어간 것은 예능을 넘어 방송 시스템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강경준과 장신영은 SBS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을 통해 ‘비혼 커플’에서 부부가 되는 전 과정을 공개했다. 방송화면 캡처
“민감한 사생활 노출 피해, 제작진이 책임져야”

방송계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상파 방송의 한 중견 예능프로그램 PD는 “여전히 ‘예능이 다 그렇지’ 라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후배(PD)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관찰카메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제작진들이 일반인이나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공개해 방송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근 몇몇 관찰예능프로그램은 조작 의혹이 일기도 했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한 개그맨 김재욱은 제작진이 ‘악마의 편집’을 했다고 주장했고, tvN ‘둥지탈출3’에 나온 아역배우 김수정도 아버지에게 감시 당하는 모습은 “제작진에 의해 과하게 편집된 것”이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소연했다. 화젯거리를 위해 갈등만 부각하고 해결점은 제시하지 못한 제작진의 불찰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작진이 ‘리스크 컨설턴트’ 역할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사생활이 공개됐을 때 자칫 잘못하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며 “제작진이 정신적 피해까지 보듬을 수 있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 기획단계부터 정신과 의사 등이 자문할 수 있도록해 출연자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찰예능프로그램의 사전제작화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출연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완성도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뒤탈이 없어서다. 나영석 PD가 tvN ‘꽃보다 할배’나 ‘신서유기’ 시리즈 등을 사전제작 해서 방영하는 방법이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하지만 방송사의 현실을 감안하면 녹록하지 않다. 한 방송작가는 “요즘 관찰예능프로그램은 쪽대본으로 ‘생방송’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과 다를 바 없다”며 깊이 있는 접근이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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