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 ‘공부하는 지도자’ 면모
K리그선 박항서에 8승1무1패 전적
박항서, 히딩크 리더십 발휘
“조국 사랑하지만 감독 임무 다할 것”
김학범 감독이 27일 우즈베키스탄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8강에서 선수들에게 뭔가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브카시=연합뉴스

각본이라도 짠 듯 한국인 사령탑끼리 운명의 맞대결을 펼친다.

김학범(58)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9일 오후 6시(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박항서(59) 감독이 지휘하는 베트남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을 치른다. 두 팀 모두 8강에서 연장 혈투를 소화한 뒤 단 하루를 쉬었다. 기량 못지않게 체력과 정신력이 중요하다.

두 감독의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다. 김 감독은 무명 선수 출신으로 태극마크는 고사하고 프로에서도 못 뛰었다.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은퇴한 뒤 은행 직원으로 일한 경력도 있다. 1992년 은퇴한 뒤 ‘공부하는 지도자’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시절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 밑에서 코치로 일하며 비디오 분석을 익혀 상대 약점을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틈만 나면 남미와 유럽을 방문해 수준 높은 리그를 보며 전술을 배워 ‘지략가’로 자리를 굳혔다. 별명도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빗댄 ‘학범슨’이다. 김 감독은 K리그 지휘봉을 잡았을 때 상대 전적에서도 박 감독에 8승1무1패로 월등히 앞서 있다.

시리아와 8강에서 연장 후반 골이 터지자 환호하는 박항서 베트남 감독. 브카시=연합뉴스

박 감독은 선수시절 프로에서 5시즌을 뛰었지만 국가대표로는 빛을 보지 못했다. A매치 1경기 출전이 전부다.

1988년 은퇴한 뒤 LG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K리그에서 경남, 전남, 상주 등을 이끌었지만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사실 그가 한국 축구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마지막으로 택한 행선지가 베트남이었다.

그러나 축구 변방 베트남에서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에게 배운 대로 선수들의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십으로 ‘기적’을 썼다. 올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역사상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베트남의 박지성’이라 불리는 공격수 르엉 쑤언 쯔엉(23ㆍ호앙 아인 잘라이)은 “박 감독님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늘 믿어줬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가 맞서 싸울 능력이 충분하다고 북돋워줬다”고 고마워했다. 베트남 팬들은 주산물인 쌀과 히딩크를 합쳐 박 감독을 ‘쌀딩크’라 부른다.

그는 벤치에서는 종종 욱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K리그 감독 시절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 당한 것만 7번이다. 시리아와 8강(1-0)에서 물병을 바닥에 던지기도 했다.

판정에 항의하며 물병을 집어 던지는 박항서 감독. 브카시=연합뉴스

베트남 대표팀은 10여 년 전 재능 있는 10~11세 아이들을 선별해 집중 육성시킨 ‘황금세대’다. 베트남 축구의 미래인 이들은 자부심이 강해 한국을 만나도 주눅들지 않는다. 베트남 프로축구 호앙 아인 잘라이 정해성 총감독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기술이 뛰어나다. 상대 뒷다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도 갖췄다”고 했다. 박 감독은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고 조국을 너무 사랑하지만 지금은 베트남 감독으로서 책임과 임무를 다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한준희 KBS 위원은 “베트남은 수비를 단단히 한 뒤 몇몇 선수의 개인기, 민첩성을 활용해 역습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이 선제골을 넣으면 의외로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도 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약점을 드러낸 측면 수비를 얼마나 보강했느냐가 관건이다.

한국이 이기면 일본과 금메달을 놓고 다툴 가능성이 높다. 한일 결승이 성사되면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결정전(한국 3위, 일본 4위) 못지않게 큰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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