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었다. 섭씨 33도 이상의 폭염이 31.2일을 기록해 기상관측 이래 최장 기록을 세웠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폭염을 국가재난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을까. 문제는 올해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상학자들은 올해 이상폭염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빈곤층에 선풍기 몇 대 전달하고 전기 요금 한시 인하로 그칠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무더위와 강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시설계를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외국의 지하도시를 눈여겨 볼 만하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맹추위가 서너 달씩 이어지는 캐나다는 몬트리올에 대규모 지하도시를 건설했다. 7개 지하철역 구간을 연결한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는 여의도의 1.5배, 길이가 32㎞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도시다. 워낙 춥다 보니 광범위한 도시 공간의 지하를 개발해 사람들이 생활하기 편하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몬트리올 사람들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추위에 떨지 않고 편하게 이동한다. 도시에서 이동은 곧 생산성과 연결된다. 추위나 더위 등 자연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동이 자유롭다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이는 곧 도시의 성장, 국가 발전과 직결된다.

캐나다의 토론토도 마찬가지다. 도시 지하에 무려 1,200개 상점이 연결된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쇼핑몰 ‘패스’가 있다.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에도 여러 구간이 연결된 지하도시가 있다. 지상에서 제대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겨울, JR삿포로역을 통해 내려간 지하도시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항구 도시인 미국의 뉴욕도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보니 지하도시 개발에 적극적이다. 뉴욕시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맨해튼을 중심으로 30㎞가 넘는 지하도시 개발 계획인 ‘로라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강북과 강남에 지하도시 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 광화문, 을지로, 동대문의 12개 지하철 역과 주변 30여개 건물을 연결해 총 길이 4.5㎞에 이르는 지하공간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강남의 경우 2023년까지 코엑스 지하공간을 광범위하게 개발해 교통허브로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무조건 두더지처럼 땅만 판다고 지하도시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하공간에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심을 수 있어야 한다. 지하에서 생산ㆍ소비활동이 일어나고 각종 예술활동을 통한 구경거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거주민 뿐 아니라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 지하도시가 성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고 지하공간 개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에는 200개가 넘는 식당, 1,700개의 상점, 30개의 극장, 박물관, 호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여러 군데 큰 광장과 분수가 있으며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걷는 즐거움을 주는 오솔길도 있다. 그래서 지하인데도 답답하지 않고 지상 못지 않은 재미를 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을 위한 장치다. 몬트리올은 언더그라운드 시티 곳곳에 공원 같은 쉼터를 만들어 사람들이 편하게 모여 이야기하거나 음식을 먹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생활공간을 조성했다. 뉴욕은 로라인에 자연 채광으로 식물을 키우는 세계 최초의 지하 자연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건축가인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코엑스의 지하광장이 성공하려면 외부 공간의 장점과 실내 쇼핑몰의 장점을 결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욕의 선큰가든처럼 지하에 외부의 자연을 재현하고 지상 광장과 연결해 생활의 흐름을 이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지혜롭게 만들기도 한다. 올여름 무더위를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도시 개발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최연진 디지털콘텐츠국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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