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87)씨가 치매 증상을 이유로 27일 재판에 불출석했다. 전씨의 측근은 “(전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은 70년간 알아 기억하지만 1980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건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시민들은 “학살의 책임자인데도 치졸한 변명만 늘어놓는다”며 분노하고 있다.

전씨는 1979년 초 국군보안사령관이 됐다. 그 해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이에 반발해 이듬해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 등은 군대를 동원해 강제 진압했다. 당시 폭행이나 총격으로 사망한 사람이 193명,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이 376명에 달했다.

고 조비오(1938~2016) 신부는 생전 “1980년 5월 21일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수 차례 목격담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씨는 지난해 4월 발간한 회고록에서 ‘조 신부의 주장은 왜곡된 악의적인 주장.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반박했다. 직후 조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전씨를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1년 넘게 수사를 벌여 5ㆍ18 당시 헬기사격 증거들을 확보, 전씨를 기소했다. 그 첫 번째 재판이 27일 광주지법에서 열렸는데 피고의 불참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재판부는 10월 1일 재판에 출석할 것을 전씨 측에 요구했다.

5ㆍ18민주화운동을 왜곡 서술해 출판ㆍ배포가 금지됐던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씨의 회고록을 정리해 펴낸 민정기 전 공보비서관은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재판 불참 이유를 밝혔다. 민 전 비서관은 “(알츠하미어) 진단을 받은 게 2013년이고, 그 전부터도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주변 사람들이 느끼고 있었다”면서 “(지금도) 사람을 알아보고 말을 나누는데, 나중에는 누가 왔었다는 사실도 기억을 못 한다”고 현재 상태를 전했다.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은 2000년부터 자료를 준비한 전씨가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면서 자신이 넘겨 받아 완성한 것이라고 민 전 비서관은 설명했다. 퇴고 과정에 전씨가 전혀 개입을 안 했고, 조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은 “내가 쓴 것 같다”고 했다. 전씨도 조 신부의 주장이 허위라고 했지만 거짓말쟁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자신이 썼다는 것이다.

민 전 비서관은 전씨의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전했지만 최근까지 전씨는 다수의 대외활동을 무리 없이 해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투표소를 찾았고, 2015년에는 모교인 대구공고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특히 회고록 발간 3개월 전인 지난해 1월에는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신년회까지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씨는 “새로운 대통령은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근혜도 아주 똑똑하고 잘 하는데 혼자 사니까. 인간관계라는 게 부부간에 살면서 싸우면서 좋은 게 많이 나오는 법인데 혼자서 어떻게 하겠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민 전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하고는 70년 전부터 알던 사람이고 성격이나 이런 것에 대해 아니까 언급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5ㆍ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전 전 대통령이) 광주 그 당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경험한 일도 아니고 가서 본 적도 없고. 현장에서 있었던 일 같은 건 알 수가 없다”고 해명했다.

조진태 5ㆍ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전씨 측의 해명에 강력 반발했다. 조 이사는 “전두환씨 참 치졸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냈다는 사람이 무엇이 두려워서 재판정에 서기를 꺼리느냐”고 반문하면서 “2017년 초에도 여러 차례 대외활동을 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건강상 이유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건 도대체 납득이 안 되는 핑계거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회고록을 자신이 작성했다고 주장하는 민정기 전 비서관을 고소ㆍ고발해서 재판정에 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씨와 측근들을 향해 “1980년 5월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회피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하루빨리 사죄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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