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개그맨이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오늘은 왠지”라는 유행어를 만든 적이 있다. 특유의 리듬으로 “오늘은 왠지”를 읽고 그 다음에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 가는 방식이었다. 라디오는 소리로 전하는 것이라 표기가 문제 되지 않지만, 막상 이것을 글로 옮기려고 하면 ‘왠지’와 ‘웬지’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게 된다. 발음상으로는 두 가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때 쓰이는 ‘왠지’는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왠지 기분이 우울하다”라고 하는 것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기분이 우울하다는 뜻이다. 즉 이때의 ‘왠지’는 ‘왜’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부사에 서술격 조사 ‘이다’의 활용형 ‘인지’가 결합한 것이다. 반면에 “네가 여긴 웬일이니?”에서는 ‘웬일’로 쓰는 것이 옳다. 원래 ‘웬’은 ‘어찌 된, 어떠한’의 뜻을 나타내는 관형사이다. 그래서 “웬 낯선 사람이 말을 걸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웬일’도 원래는 ‘일’이라는 명사 앞에 관형사 ‘웬’이 붙은 것인데, 두 말이 결합하여 자주 쓰이다 보니 한 단어로 인정한 것이다. 유사한 형태로 ‘웬걸’도 있다. “웬걸 이리 많이 사 왔니?” “똑똑한 줄 알았더니, 웬걸”과 같은 문장에서 쓰인다. ‘웬만하다’도 자주 틀리는 말이다. “웬만하면 네가 참아라”에서 처럼 흔히 ‘웬만하면’의 형태로 많이 쓰는데, 이것을 ‘왠만하면’으로 잘못 표기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결국 ‘왠지’ 외에는 모두 ‘웬’으로 쓴다고 생각하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오래 전 학교 교정에서 본 현수막이 생각난다. 학생회에서 “000가 왠 말이냐!”라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그 옆에 이런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왠 말이냐가 웬 말이냐!”

이운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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