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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피해자다움의 함정

입력
2018.08.2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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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밀리컨. 미국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물리학상(1923년)을 수상한 과학자다. 1909년 밀리컨은 기름방울을 이용한 실험으로 자연의 기본 전기전하량을 측정하였다. 밀리컨은 이 실험과 다른 실험의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은 데이터 조작 논란으로도 유명하다. 밀리컨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데이터를 임의로 버렸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이 실험에는 또 다른 연구윤리 문제가 있었다. 실험 당시 밀리컨의 대학원 학생이었던 하비 플레처는 기름방울 실험에 얽힌 비망록을 남겼다. 플레처의 유지에 따라 이 비망록은 자신이 사망한 1년 뒤인 1982년 ‘피직스 투데이’에 실렸다. 비망록에 따르면 기름방울 실험을 주도한 것은 플레처 자신이었으며 실험 결과 논문의 저자를 정할 때 밀리컨과의 거래가 있었다. 밀리컨은 플레처의 신혼 살림집까지 찾아와서 실험 결과를 정리한 일련의 논문들 중 첫 번째 논문은 밀리컨 자신의 단독 저자 논문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플레처에게 말했다. 대신 나중에 나온 논문 하나는 플레처를 단독 저자로 해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플레처는 이를 원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지도교수가 집까지 찾아와서 부탁하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할 대학원 학생은 아마 전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박사학위 논문과 노벨상 논문을 맞바꾼 셈이다.

이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플레처가 밀리컨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겠거니 하고 종종 물었다. 놀랍게도 그때마다 플레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밀리컨이 함께 있는 동안 자신에게 굉장히 잘 대해 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예전에 나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보고 들었다. 지도교수야 학생의 학자로서의 생사여탈권을 직접 틀어쥐고 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박사 후 연구원과 고용교수 사이의 관계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고용교수가 잘 되게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안 되게 앞길을 막기는 쉽기 때문이다. 열 명의 아군을 만드는 것보다 한 명의 적군을 만들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은 학계에서도 금과옥조이다.

이런 까닭에 윗사람이 부당하게 해코지를 하더라도 묵묵히 참고 일상을 이어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고 공은 공대로 뺏겨 술자리에서 온갖 울분을 거친 욕설로 다 쏟아내고는 바로 다음날부터 다시 그 윗분과 같이 논문을 쓰는 게 전혀 드물지 않았다. 고용교수의 꾐에 속아 원래 제안보다 훨씬 못한 조건으로 계약하고서도 본인이 ‘사기꾼’이라 불렀던 그 사람을 부모처럼 늘 극진히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연이 나의 직업군에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플레처에게서도 내 동료 과학자들에게서도,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봐도 요즘 유행하는 ‘피해자다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나는 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 최근 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지사가 1심 재판에서 왜 무죄를 받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상식적으로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대목이 바로 ‘피해자다움’이었다. 안희정 전 지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소인의 사건 이후 언행이 성폭행 피해자답지 않고 평소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의문스러웠다는 재판부의 판단 때문이었다. 피해자가 왜 꼭 피해자다워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판결을 내린 재판부가 과연 얼마나 많은 종류의 ‘피해자다움’을 조사하고 이런 말을 썼을까 궁금해졌다. 장담컨대, 이번 판결을 지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는 30대 남성들조차 대부분은 직장상사의 부당한 행위로 피해를 보더라도 ‘피해자다운’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월급쟁이들은 어차피 ‘피해자다움’을 숨기는 반대급부로 월급을 받는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플레처가 밀리컨에게 악감정이 없었다고 해서 그의 비망록이 모두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밀리컨에 대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이 논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다면 플레처는 비망록에 그런 내용을 넣지도 않았을 것이다. 증거가 부족하면 밀리컨을 조사하면 된다. 밀리컨은 플레처 비망록이 나오기 훨씬 적에 죽었기 때문에 직접 확인할 길은 없었다. 반면에 안희정에게는 많은 것(왜 말을 바꾸었는지, 왜 휴대전화를 폐기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재판부가 그 과정을 생략했을 뿐이다.

‘피해자다움’의 논리를 조금 확대하면, 전두환이 유치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온 국민이 즐겼다는 이유로 그의 군사쿠데타와 광주학살이 국민적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 목숨 걸고 격렬하게 시위했던 사람들은 불법이라며 잡아갔으니 이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위력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에서는 입바른 소리로 불의에 저항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의 법관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상 초유의 재판거래를 일삼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현직도 아닌)이 여태 저리도 태평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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