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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태풍 솔릭이 보여준 불편한 현실

입력
2018.08.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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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다녀갔다. 제주도로 접근할 때만 해도 2010년 수도권을 휩쓸었던 곤파스보다 강력하다고 해서 전 국민을 긴장시켰다. 14개 시ㆍ도에서 8,600여개의 학교가 휴교나 휴업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규제혁신 회의를 연기하고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해 태풍 대비책을 챙겼다. 다행스럽게도 태풍 솔릭은 제주도를 지나면서 속도가 느려지고 세력이 약화해 큰 피해 없이 우리나라를 지나갔다. 지긋지긋한 무더위를 식혀주고 가뭄에 시달리던 지역에 적지 않은 비를 뿌려 농사를 도와주었다. 생각보다 착한 태풍이었던 셈이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대비하는 모습이 과거보다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이 직접 대비 태세를 챙기고 안전 차원에서 학생들을 등교시키지 않은 것도 바람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못지않게 태풍이 자주 오는 홍콩에서 살아본 나로서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휴교나 휴업 여부를 사전적으로 정해놓은 기준 없이 시ㆍ도교육청이 결정하거나 학교장에게 권고하는 방식이 주먹구구식으로 느껴졌다. 강력한 태풍이 오는 데도 직장인은 출근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현실에서 유아원이나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을 누가 돌볼지 걱정이 앞섰다.

10년 전 홍콩에서 살 때 내 아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강력한 태풍이 불어올 때였다. 바람의 세기 등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5단계(1, 3, 8, 9, 10단계) 경보 시스템이 있어서 태풍의 등급이 8단계(바람속도 시속 63~87km 이상)가 되면 학생들은 학교를 가지 않고 직장인들도 쉰다. 정상적으로 출근을 하고 학교를 갔더라도 8단계 경보가 발령되면 서둘러 귀가해야 한다. 1~2시간 지나면 버스와 지하철이 운행을 중지하므로 집에 갈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택시를 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금은 운전기사가 부르는 게 값이다. 태풍경보 속에서 택시를 운행하다 사고가 나면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9단계나 허리케인이 오는 10단계로 높아지면 모든 야외 활동이 금지되지만, 오전 중에 3단계로 낮아지면 2시간 내 출근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 살 때는 폭설에 대처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스노데이’라고 해서 일정 규모 이상의 폭설이 내리면 학생들은 학교를 가지 않고 직장인들도 하루를 쉰다. 아파트보다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많고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 앞 도로에 쌓인 많은 눈을 스스로 치워야 한다. 직장 가는 것보다 중노동인 셈이다. 내가 다녔던 국제통화기금(IMF)은 눈의 상황에 따라 스노데이와 함께 출근을 2~3시간 늦추어 눈 때문에 엉망이 된 도로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직원들을 배려했다.

우리는 강력한 태풍이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도 평상시처럼 직장을 나가는 것이 미덕이다. 도로나 지하철 등이 정상 가동하기 어려운데도 제때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밀려들면 도시의 교통망은 아예 마비가 되고 만다. 각종 교통사고와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허다하다. 학생들은 쉬지만 회사를 가야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 걱정까지 해야 한다. 폭설로 엉망이 된 도로로 인해 두세 시간 늦게 도착해서 퇴근 걱정, 아이 근심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때가 됐다. 홍콩이나 미국처럼 일정 기준을 넘는 태풍이나 폭설 때는 학교와 회사가 같이 쉬도록 하는 것이다. 도시국가인 홍콩처럼 전국을 하나의 단위로 운영하기는 어렵지만, 나라 전체로 단일 기준을 정하고 운영은 시ㆍ도 단위로 한다면 국민의 높아진 안전의식에도 부합하고 기업 경영의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급한 업무는 인터넷 강국답게 집에서 휴대폰과 이메일로 처리하면 된다. 사고로 인한 피해가 줄고 도로 복구 등이 원활해지면 하루 쉬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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