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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번호 붙은 사람들의 나라

입력
2018.08.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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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한국에 살다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인 일에 뒤늦게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주민등록제도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앞부분은 생년월일, 뒷부분은 성별과 지역 코드로 이루어진 번호다. 이 번호는 주민등록증이라는 형체도 갖고 있는데, 여기에는 내 얼굴과 지문이라는 생체 정보와 현 주소까지 노출돼 있다. 내 주민등록을 알면 나라는 사람의 생일, 생물학적 성별, 생김새, 지문, 과거와 현재 주소,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모두 알 수 있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 이 번호를 갖고 있다.

이런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

한국의 주민등록제도와 그나마 가장 비슷한 제도가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인데, 이스라엘도 한국 정도는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정보를 쪼개고 숫자를 무작위로 부여한다. 반면 한국은 한 사람을 하나의 번호에 연결하고, 이를 뛰어난 행정력으로 관리하며, 이를 정보 강국답게 전산화까지 한 결과, 한국인의 개인 정보를 전 세계의 공공재로 만들었다.

주민등록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과 연결돼 있고 규칙에 부합하는 딱 하나의 13자리 번호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자신과 연결된 번호가 하나 이상이거나, 한국에 살지 않거나, 어떤 식으로든 다르면 한국의 시스템에서 아예 배제될 위험에 처한다는 말이다. 주민등록제도는 1968년에 본격 도입됐다. 그다지 먼 과거가 아니다. 당시 살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다. 전 국민에게 번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면 당연히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한 명인데 주민등록번호가 두 개인 경우가 있다. 통상 한 주민등록번호는 주민등록에, 다른 하나는 가족관계등록부에 연결돼 있다. 1968년 일제 등록시 발생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평생 어머니와 세대원으로 살았는데 가족관계등록부를 발급해 보면 엄마가 없는 기상천외한 일이 생긴다. 본인도 모르고 살다 상속, 노령연금 신청 등을 계기로 뒤늦게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해외 동포가 있었다. 우리 주민등록법은 본래 해외 영주권자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지 않았다. 혼동하기 쉽지만, 주민 등록은 국민 등록이 아니다.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에 사는’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번호다. 그렇다 보니 특히 한국 국적을 유지한 재일동포들은 처음부터 불편이 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이주해(강제이주가 많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조선인은 일본에서 특별영주권을 갖는다. 특별영주권은 한번 포기하면 회복할 수 없다. 일본에 살면서 한국이라는 뿌리를 지키고자 국적을 유지한 동포들이 모국인 한국에 와서 몇 년을 살아도, 가정을 꾸려도 특별영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지 못해 행정 사각지대에 놓였다. 특별영주권자가 수십만 명인데 이 법이 개정된 것은 고작 몇 년 전이다.

다른 기막힌 케이스는 새터민이다. 새터민들은 경기 안성시에 있는 하나원 소재지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받다보니 뒷자리 코드가 거의 동일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에서 안성시 코드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한국인들의 입국을 거절하거나 조사를 했다. 그냥 고향이 안성일 뿐인 사람들이 중국 공안을 만나는 기막힌 일이 자꾸 발생했고, 정부가 새터민 주민등록번호 구조를 바꾸고서야 정리됐다.

아직 성별 정정이나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지역 차별에 대해서는 쓰지도 못했다. 이 모든 일은 결코 불가피한 불편이 아니다. ‘주민 하나=하나의 일련번호’로 정하지만 않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다. 산 사람이 겪는 곤란보다 일련 번호의 편리함이 중할 수 없고, 중해서도 안 된다. 사람에 정보가 노출된 번호를 붙이는 국가, 이 제도가 익숙한 사회의 한계를 생각할 때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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