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회장 등 ‘최장수 CEO’
선릉역 인근에 북 카페 ‘북앤빈’
복합문화공간 ‘북쌔즈’ 문 열어
인문ㆍ사회학 서적 등 1만여권 구비
장기 시리즈처럼 강연ㆍ공연 계획
오늘 ‘금난새의 챔버뮤직’ 첫 공연
“직접 경영모델 강연도 할 생각”
복합문화공간 북쌔즈는 지난 달 16일에 문을 열었다. 경영 성적표에 몇 점을 주겠느냐는 질문에 이승한 N&P그룹 회장은 “(지속 가능한 경영)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해 B학점”이라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주인은 “동네서점이 아니다”고 강조하지만, 객관적으로 업종을 구분하자면 그렇다. 2호선 선릉역 근처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본 가게 ‘북앤빈’, ‘북쌔즈’ 얘기다. 차별화 지점을 찾자면 3월 문을 연 북앤빈은 서점과 카페와 공간대여 기능을 결합한 북카페, 지난달 문을 연 북쌔즈는 서점, 빵집, 카페, 강연장, 공연장 기능을 합친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 두 가게 주인은 ‘최장수 CEO’로 불렸던 이승한 넥스트앤파트너스(N&P) 그룹 회장. 1970년 삼성그룹에 입사,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와 홈플러스 삼성테스코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2014년 홈플러스그룹 회장 퇴임 후 기업경영을 멘토링하는 N&P그룹을 세웠고 올해 두 가게를 내며 동네책방 열풍에 합류했다.

23일 북쌔즈에서 만난 이승한 회장은 그곳을 “조용히 혼자 책 읽고 사색하는 여느 동네책방과는 다르다. 책 읽고 토론하며 미래를 구상할 장소”라고 소개했다. “한국인의 책 읽는 시간이 점점 줄고 있잖아요. 인터넷은 정보를 탐색하는 거지 사색하는 건 아니니까 책 읽는 문화가 필요하고, 그런 문화를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죠. 이 근처에 식당, 술집, 남자 직장인들이 많아요. 가게도 아기자기한 멋이 없어 여성 유동인구는 적습니다. 이런 동네 분위기도 바꾸고 싶었고요.”

먼저 문을 연 북앤빈이 좀더 저렴한 가격에 세미나, 강연 장소로 이용할만한 (북쌔즈의) 보완적 공간이라면, 북쌔즈는 이 회장의 아이디어를 몽땅 모은 핵심 공간이다. 이 회장은 북쌔즈 기획을 직접하고 책 매대, 의자 하나까지 디자인할 만큼 애정을 듬뿍 담았다. “삼성미술관 리움 마스터플랜을 제가 만들었어요. 미술관 콘셉트 만들고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 테리 파렐에게 협업을 설득했죠. 북쌔즈는 확 트인 공간 한 편에 독특한 개념을 심어두고 싶었어요. 1층 베이커리 옆 혼자 책 읽는 공간을 잠수함으로, 그 바로 위 2층 토론실을 우주선 모양으로 기획했죠.”

복합문화공간 '북쌔즈'를 기획한 이승한 N&P 그룹 회장. 배우한 기자

동네책방 같은 “잘 안 되는 아이템만” 모아 놓았다. 4,000종 1만여권에 달하는 책은 근처 ‘최인아책방’과 이 회장의 부인인 엄정희 서울사이버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선정했다. 인문학, 사회학 책이 주로 꽂힌 1층이 “감성의 책장”, 경영학 도서가 주로 꽂힌 2층은 “이성의 책장”이란다. 이 회장은 “여느 동네책방에는 매번 연사가 달라지는 특강이 많지만 우리는 ‘대하소설’같은 시리즈 강연을 주로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9월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정규강좌 12번을 무료로 선보인다. 10월부터는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동양철학 강연도 시작한다. “북쌔즈 300m 반경에 있는 직장인이 4만명인데 즐길 문화가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홈플러스에서 일할 때 내건 전략이 ‘위 브링 피플 투 스토어’, 사람들이 점포에 오게끔 매력적인 마케팅을 하자는 거였거든요. 지금은 ‘위 브링 스토어 투 더 피플’, 편의점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듯이 점포가 고객 가까이 가야 하는 시대에요. 그 개념을 공연장에도 도입해 보자는 거죠. 주 52시간이 시작되면 직장인 라이프 스타일도 바뀔 텐데 퇴근하면 모여서 술 먹던 문화에서, 이렇게 개인 취향을 살리는 문화로 바뀌도록 북쌔즈가 기여했으면 해요.”

공연 역시 ‘대하소설’ 같은 시리즈로 선보일 생각이다. 28일 열릴 ‘금난새의 챔버뮤직’ 첫 공연은 80석 전부 매진됐다. 이 회장은 “내년 ‘금난새 챔버뮤직’ 시리즈는 최소 20회 이상 선보일 것”이라며 “자기계발 강연보다 철학, 역사학, 음악 같은 지식과 지혜가 축적될 수 있는 강연과 공연을 소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르면 올해 말, 직접 연사로도 나설 생각이다. “1970년 삼성 그룹 입사 이후 반세기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경영모델 60가지를 일주일에 하나씩 1년 간 소개한다. 이렇게 책 읽고 강연 듣고, 공연 본 ‘동네 직장인들’이 토론하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소모임을 만들고 지원할 계획이다. “제 전공이 도시공학이란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영종도 신공항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제가 추진했는데 뜬금없이 그런 걸 맡은 건 아니거든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게 살기 좋은 마을 하나 만드는 거예요. 그 꿈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책방 낸 이 곳에) ‘걷고 싶은 길’ 하나는 만들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듭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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