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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자동차 현대사] 스피라, 토종 첫 미드십 스포츠카

입력
2018.09.04 15:00
수정
2018.09.04 19: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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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최초의 국산 미드십 스포츠카 스피라가 공식 탄생한다. 제조사는 어울림 네트웍스. 미드십 스포츠카라는 생소한 형태의 자동차였을 뿐 아니라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완성차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는 가내 수공업 형태로 자동차를 만드는 역사가 있어 중소기업이 자동차를 만든다는 게 생소하진 않지만,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불가능한 일을 어울림네트웍스가 해냈다.

역사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유학 후 아시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를 거친 자동차 디자이너 김한철씨는 자신이 직접 미드십 스포츠카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90년대 초 프로토자동차를 설립한다. 역시 쌍용차 디자이너였던 그의 아내 최지선씨와 함께였다.

프로토자동차가 개발한 스페어타이어 커버 등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용품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완성차 업체의 리무진 모델 개발에도 나섰고,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프로젝트 요청도 밀려들어 차근차근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1991년 즈음 그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김 사장은 그때 이미 “2인승 미드십 스포츠카 개발”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있었다. 젊은 김한철의 선한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꿈은 컸지만, 자금은 늘 부족했다. 자동차 외장용품, 디자인 외주 제작 등의 사업을 하며 벌어들인 돈은 모두 스피라 개발에 투자됐다.

처음 자동차의 모습을 드러낸 건 2002년 만든 ‘PS-Ⅱ’였다. 스피라의 전 단계로 도로 위를 달리는 미드십 스포츠카로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권 국도에서 테스트 드라이브를 겸해 PS-Ⅱ를 직접 운전해볼 기회가 있었다. 미드십 특유의 민첩한 조향과 뛰어난 순발력이 기억에 남는다. 뒤에서 전해오는 휘발유 섞인 배기가스 냄새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금은 바닥나고 PS-Ⅱ 양산은 좌절되고 만다. 자금은 늘 부족했고 회사는 투자자들과 다툼으로 위기상황이 계속됐다.

2007년 프로토자동차는 어울림모터스에 합병된다. 어울림네트웍스의 박동혁 사장이 투자를 결정하고 어울림모터스를 통해 스피라 만들기에 동참한 것. 어울림모터스는 스피라 시작(試作)차를 만들어 모터스포츠에 출전하기도 했다. 2008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타임트라이얼 슈퍼스프린트에 박정룡 선수가 스피라를 타고 나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스피라가 공식으로 미디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0년 3월이었다. 서울 양재역 L타워에서 미디어들을 초청해 공식 신차발표회를 열고 스피라의 탄생을 알렸다.

발표회에는 최고 사양 모델인 ‘스피라 EX’가 첫 모습을 드러냈다. 스피라는 N, S, 터보, EX 등 네 종류의 모델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모두 2,656㏄ 엔진을 사용하지만 최고출력이 180, 330, 420, 500마력으로 각각 달랐다. 최고사양인 스피라 EX는 V6 DOHC 트윈터보차저 엔진을 미드십에 얹은 뒷바퀴굴림 방식으로 최고시속 315㎞, 제로백 3.5초의 성능을 갖췄다. 커브길에서 미끄럼을 방지해주는 차동제한장치(LSD)와 트윈 클러치에 19인치 타이어도 EX에 장착됐다. 스피라의 판매가격은 7,900만원~1억6,000만원. 어울림은 “페라리의 모든 모델이 스피라의 경쟁상대”라며 자신감을 보여줬다.

국내에는 약 20여 대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중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일부 수출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후 스피라는 유럽 수출, 중국 인증 통과, 전기차 개발 등의 소식을 전했지만, 회사는 경영난에 내몰리게 된다. 2012년 어울림네트워크는 상장폐지된다.

스피라의 신화는 일단 거기서 멈췄다. 하지만 아직 실패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스피라의 부활을 기대한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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